2011년 11월 22일 화요일

“100점짜리 인생” (11/20)

“어떻게 살면 100점짜리 인생이 되는지”에 관한 좋은 글을 보았습니다. A=1, B=2, C=3, ~ Z=26이라고 보았을 때 100점이 되는 단어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예를 들면, MONEY이라 했을 때 M+O+N+E+Y(13+15+14+5+25) 모두 합하면 72점이 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러 많은 영어 단어 중에 ATTITUDE(태도)가 정확히 100점이 된다고 합니다. 태도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 서두에 재미있는 방식을 끌어드리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인생의 삶에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인생 성공 법칙에는 능력, 노력, 태도가 핵심요소이며 그중에 태도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비이기성, 합리성, 정직성, 공동의식, 그리고 신뢰등을 말합니다. 특히, “태도에서 부정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성공했다고 할지는 모르지만 사회에 폐를 끼치기 때문에 결국 성공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매우 인상적이고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이런 태도가 중요하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의 태도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던 모습이야 말로 진짜 100점짜리 인생을 살아가는 겸손한 태도가 아니셨나 싶습니다.
· 비이기적인 태도
· 합리적인 태도
· 정직한 태도
· 공동의식을 가지는 태도
· 신뢰받는 태도
이러한 태도가 있어야 100점짜리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이권을 위해서 모여진 모임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영광과 그분의 뜻(사역)을 이루고자 함께 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요, 자녀들입니다. 비이기적인 모임입니다. 개인과 특정인 편에 서서 사역하는 모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 편에서 모여진 합리적인 모임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서 있기에 무엇보다 투명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모여진 모임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공동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공동의식을 가지고 함께 영혼구원사역을 위해 모여진 모임입니다. 이 사역을 위해 서로 믿고 따르며 하나님을 신뢰하듯 서로를 신뢰하는 모임입니다. 이런 교회 공동체이기에 100점짜리 인생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언제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세상 종말이 오기 전에 우리에게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개인의 종말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적인 100점짜리 인생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 100점짜리 그리스도인의 인생을 인정받는다면 이것보다 더 큰 축복과 기쁨이 없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100점이라야 7,80년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100점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의 태도 역시 비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며 정직하게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서로 신뢰하며 영혼구원을 위한 목장사역을 감당한다면 온전히 100점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에게 책망은 듣지 않을만큼 적잖은 점수를 얻게 되지 않을까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구원을 넘어 하나님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이 있는데 그 상급에 따른 높은 점수 배당은 모르긴 몰라도 “영혼구원”사역일 것입니다. 인생성공의 100점짜리 삶의 태도를 가지고 VIP를 섬긴다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도 100점짜리 인생일 것이라 인정받을 것입니다.
Change your ATTITUDE.. And You change your life!!

2011년 11월 16일 수요일

“신약교회를 세운다는 확신과 자부심” (퍼옴)(11/13)

지난주에 매월 첫 주에 모이는 총목자모임이 있었습니다. 총목자모임은 목자들만의 목장모임입니다. 교회 전반적인 사역을 나누기도 하지만 목자들의 개인의 삶을 나누게 됩니다. 목자님들의 사역과 삶 나눔을 들으면서 “개척가정교회인 주바라기 교회 목장사역이 이제 서서히 안정된 궤도로 진입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기존교회 사역자들과 비교해도 절대 쉽지 않은 영혼구원 사역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감당하고자 하는 자원함과 기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 사역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귀한 사역이고, 가치 있는 것이기에 아틀란타한인침례교회 김 재정 목사님의 목회칼럼을 통해서 가정교회 사역의 본질적인 의미를 목자님들과 목원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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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크기와 숫자에 의해 평가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세상적 평가 기준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교회와 교회 식구들과 목회자들이 성공한 교회가 되기 위해 경쟁과 패배의식에 시달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교회가 가진 정신과 방향에 의해 평가 받아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을 바르게 붙잡고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교회가 되면 그것이 참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한 목사님이 사례발표를 하였습니다. 가정교회를 시작한지 5년이 지나기까지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한명도 구원받는 사람도 생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았더니 이제 5년이 넘어 가면서 한명씩 구원받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5년이 지나도록 한명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성장이 안되었지만 여전히 가정교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교회의 정신과 방향을 분명히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를 하면 숫자적인 부분에서는 감소나 정체가 될 수 있습니다. 성장이 되어도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이루어집니다. 수평이동을 막고 VIP에 집중을 하고 있고 또 전도하는 일이 쉽게 열매가 맺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숫자적인 열세와 그에 따르는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소원 하시는 교회를 세운다는 분명한 확신과 자부심이 있어야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목회자뿐 아니라 교회 식구들이 신약교회를 세운다는 분명한 확신을 가질때 가시적인 부흥과 성장에서 자유함을 가질수 있습니다. 그러한 확신에서 희생과 대가를 치루고자 하는 결단이 생겨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소원 하시는 교회를 세운다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잘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합니다. 보람도 있고 좌절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지나가는 과정입니다. 눈에 보이는 열매나 결과에 좌우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정작 조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을 잃어버리고 세상적인 기준에 타협하고 적당히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여건 속에서도 교회의 올바른 정신과 방향을 붙잡고 세상적인 기준에 위축 당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걷는 길이 조금은 힘들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길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권이고 행복입니다. 신약교회를 세우기 위해 댓가를 치루며 묵묵히 한길을 걷는 교회 식구들로 인해 감사함이 있습니다.

2011년 11월 8일 화요일

“올해가 가기 전에..” (11/6)

지난 번 나 목사님(갈보리교회)께서 조건이 좋은 리스(Lease) 복사기가 있는데 교회에 제공하는 설명회가 있다고 참여여부를 묻는 전화를 주셨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니 5년 계약해서 매월 리스비용이 $300정도 하는데 리스비용은 그대로 되돌려주고, 5년후에는 리스한 복사기가 교회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복사기 리스비용은 전혀 없고 카피(Copy) 사용료만 내면, 5년후에는 복사기가 교회 것이 되는 조건입니다. 카피(Copy) 비용도 장당 1센트도 되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는 저렴한 가격입니다. 누가 들어도 이해되지 않는 조건이라 혹시 사기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확실히는 잘 모르겠지만, 회사 본인들의 말에 의하면 본 회사(DocuSystems)가 또 다른 리스회사와 연관해서 비영리단체에 복사기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정부에서 얼마만큼의 지원을 받나 봅니다. 어째든 얼마 전에 복사기가 들어와서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 복사기를 신청할 때 원 경연 목자님이 저 대신 설명회에 참여해서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는 복사기가 이미 들어와서 잘 사용하고 있다고 듣고 있는데, 신청한지 한 달이 넘어 가는데도 복사기를 제공하겠다는 연락이 없었습니다. 리스하는데 소정의 절차가 있기는 하겠지만 주바라기 교회가 너무 늦는 듯 했습니다. 교회 재정적인 상태도 중요했는지 신 정묵 회계사님을 통해 확인하고 팩스(Fax)로도 보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락조차 오지 않는 것입니다. 몇 번의 걸쳐서 언제쯤 복사기가 도착하느냐고 물었지만 알겠다고만 했지 결과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주바라기 교회 재정상태가 리스회사에서 요구하는 것만큼 그리 많은 1년 예산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러다보니 리스회사에서 결과를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간에서 일하는 세일즈맨만 저에게 볶였던(?) 것입니다. 엄청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 갑자기 재정상태가 부족하다는 결과를 듣게 되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교회 재정이 이정도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결과에 새삼 가난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안된다는데 무조건 달라고 떼쓸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쉽지만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담당 세일즈맨이 주바라기 교회에 대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지 본인이 사용해 왔던 동일한 기종의 데모(Demo)용을 아무 리스조건(Unconditional)도 없이 그냥 주바라기 교회에 제공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뜻밖에 횡재(?)였습니다. 요즘 복사기만 바라봐도 흐뭇하고 감사한 복덩어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잘 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계획대로(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들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안된다고 해서 정말 안되는 일이 아닌 것임을 이번 복사기가 교회에 오는 과정을 통해서 다시한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안되는 줄 알았는데 더 좋은 조건으로 복사기를 받았으니 말입니다. 나중에 리스 비용을 다시 되돌려받는다고 해도 리스비용을 자동이체 시켜놓으면 약간 불안한 재정상태라 솔직히 부담이기는 했습니다. 거져와서 사용료만 내고 5년이 지나면 주바라기 교회 소유가 되는 조건입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늘 그분의 신실함을 믿지만 이렇게 돌려 돌려서 좋은 것을 준비해 주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분의 신실함은 변함이 없으신데 우리 믿음의 한계입니다. 솔직히 기도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끊임없이 기다리게 하시는 그분이 야속하기까지 합니다.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는 것도 아니고, 북박쳐 오르는 우리의 감정이 숨겨지지 않습니다. 힘들고 짜증나고, 때로는 화가 치밀어 올라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우리의 인내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뭐라도 해보고 싶지만 해 볼 수 있는 마땅한 대책도 없이 사방이 꽉막혀 있는 현실을 느낍니다. 어쩌겠습니까? 신실하신 주님을 믿고 기다려봅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올해가 가기전에.. 

2011년 11월 1일 화요일

“주바라기 교회가 캠프를 떠나는 이유?”(10/30)

주바라기 교회 개척 초기부터 캠프를 다녔습니다.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캠프 장소 구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캠프장소 찾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고, 교인들이 많기 때문에 캠프를 가면 중고등부나 청년부들이 가지 교인 전체가 캠프를 떠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주바라기 교회는 1년에 3번 정도 캠프를 다니고 있습니다. 재정적으로 허락만 되면 4번이라도 다니고 싶은 마음이고, 아직까지는 전교인 캠프를 갖는 것에 문제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교인 수와 상관없이 전교인 캠프는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이번 겨울캠프 장소가 결정이 되었습니다. 캠프 장소가 의외로 좋으면 격년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웬만하면 갔던 장소는 겹치지 않게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니려고 합니다. 이 냥이면 새로운 장소를 경험해 보고 싶고, 넓은 밴쿠버 지역을 캠프를 통해 한 번씩 돌아보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가족별로 가보고 경험해 보지 못하는 지역을 돌면서 주바라기 식구들과 좋은 추억도 만들어 가고 싶은 의도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만 없으면 밴쿠버아일랜드 주변 섬으로도 다녀보고 싶습니다. 제 자신도 캠프 자체를 좋아하지만 주바라기 학생들에게도 어릴 적부터 공동체 삶을 통해 SN(Social Networking)인 공동체 훈련을 갖게 하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주바라기 학생들의 관계가 원만한 것도 지금까지 다녀온 캠프 영향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번에 겨울캠프로 보낼 장소는 교회 건물 같으면서도 숙식이 가능한 수련회 장소입니다. 가장 좋은 점은 한 건물 안에서 모두가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닥은 온돌로 되어 있어서 오랜만에 한국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침대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1박2일이라 구태여 잠이 오지 않는데 억지로 주무실 필요는 없습니다. 밤새워 그 동안 못한 이야기 꽃을 피우시기 바랍니다. 장소 거리도 코크틀람 센터에서 50분 정도 소요 됩니다.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단점이 있기는 합니다. 왜냐하면 들락날락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한번 오시면 캠프가 마칠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거리는 50분이지만 왔가갔다 하시면 게스(Gas)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 예배 후에 떠나게 됩니다. 그 다음 날이 월요일 Boxing Day(26일)라 대부분의 회사가 휴일이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아침 일찍 움직여서 미리 떠나시면 될 것입니다.

그 동안 주바라기 공동체가 캠프를 즐기며 다닌 진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목장에서 수고하고 섬기는 영혼구원 사역에 힘을 보태 주려는 의도입니다. 목장 안에 계신 VIP 식구들을 교인 전체가 만나는 기회를 삼고, 식사와 1박을 하면서 좀 더 식구 같은 친숙한 자리를 마련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만의 교제의 자리가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분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매주 광고 드리지만 이번 겨울캠프에 한 명이라도 VIP 식구가 참여해서 주바라기 공동체가 캠프를 떠나는 이유가 더욱 분명해지기를 소원합니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 우리만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합니다. 한 순간이라도 “나를 통해 주님을 만나는 구원의 기회”가 주워진다면 그것보다 더 큰 행복과 축복이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또 확신합니다. 겨울캠프가 이제 두 달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떠날 준비는 하루 이틀이면 준비되겠지만 VIP를 위한 준비는 지금부터 시작되었으면 합니다. 남겨진 두 달 동안 VIP 초청을 위해 마음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2011년 10월 25일 화요일

“탈진(Burn-out)-너무 겁낼 것 없다(?)” (10/23)

가정교회 세 가지 축이 있습니다. 첫째는 은혜로운 목장연합예배(주일예배)이고, 둘째는 삶 공부, 그리고 셋째는 매주 모이는 목장모임입니다. 이중에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겨질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단지, 세 가지 중에 개척가정교회에서 우선적인 집중사역이 뭐냐고 묻는다면 “목장사역”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개척가정교회 시작이 원형목장 하나인데 교회에 모일 수 있는 교인이 그리 많지 않고, 삶공부 참여도도 낮기 때문입니다. 경험적으로 목장사역은 개척가정교회 사역에 기반이 되고, 목장사역이 든든해져 가면서 개척가정교회는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목장사역은 개척가정교회가 세워져 가는데 큰 디딤돌 역할이 됨을 경험해 왔습니다. 개척가정교회 뿐만 아니라 가정교회로 전환해서 사역해 가는 기존교회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목장사역이 든든해 가면 가정교회가 힘을 얻어가지만, 목장사역이 약해지면 가정교회로 전환한 교회라 할지라도 그 사역의 기본적인 틀이 무너져갈 수 있습니다. 개척가정교회가 세워지느냐? 가정교회로 전환한 교회의 가정교회 틀이 무너져 가느냐?는 목장사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문제는 그 목장사역을 감당하고 계신 목자목녀들과 목원들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정교회 사역하시는 목회자들이 모이면 나눔의 주제가 “목자목녀들의 탈진”입니다. 개인적으로 개척가정교회로 원형목장을 경험한 저로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일반(기존)교회 사역을 넘어서는 희생과 헌신이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사역이 목장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정교회에서 사역하시는 목자목녀들이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 이유입니다. 그만한 희생과 헌신이 있기에 가정교회사역에서 수 많은 영혼들의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혼구원을 위해 끊임없는 섬김을 감당하는 목자목녀들을 축복해 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개척가정교회 경험자로서, 그리고 주바라기 공동체 목회자로서 솔직하고 싶고, 숨기고 싶지 않은 속내가 있습니다. 왜 목회자들은 목자목녀들의 탈진을 두려워하는가?입니다. 목자목녀들의 탈진으로 이분들의 영적인 상태를 염려하는 것인가? 아니면 교회와 목회자체가 잘 되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목자목녀들의 탈진은 현실입니다. 외면할 수 없는 이분들의 실질적인 영적 상태입니다. 교회와 목회사역을 위해 그 모든 부담과 지침과 탈진을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미명하에 그냥 묻고 가야하느냐는 것입니다. 목자와 목녀들도 사람이고, 얼마든지 지칠 수 있고, 탈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부목회자로서 사역해 오면서 늘 가슴에 안고 있었던 아픔이 교회 건축을 위해서 수십명의 교인들이 상처를 안고 떠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사역이 사람을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포기할 수 없는 목회신념입니다. 사역하다보면 목회자도 탈진하는 경우가 있는데 평신도도 예외는 아니라고 봅니다. 자신의 능력보다 더 많은 일을 하다보면 누구에게든 올 수 있는 현상입니다. 탈진.. 너무 겁낼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위하고, 교회사역일지라도 사람을 우선해서 해결해 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사역이 잘 안 된다 할지라도 이 순간에 주님의 가장 큰 관심은 사역이 아니라 그 개인의 영혼이라고 믿습니다. 이 문제가 충분히 배려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경우 목자사역을 내려놓으면 목자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라고 봅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사역해 왔다고 보지만, 앞으로도 누군가가 힘든 상황이 오면 교회 사역이전에 당사자의 마음이 회복되도록 조치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이런 탈진현상 없이 행복함으로 사역해 가는 것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안된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세 가지 팁(Tip)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공과 실패에 대한 세상적인 관점을 버리고 사역하면 됩니다. 세상적인 관점은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맡은 사역에 충성하는 사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영혼구원에 대한 간절한 소원함을 가지고 사역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붙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맺히는 열매들이 있습니다. 그 맛이 꿀맛입니다. 마지막으로 행복하고 감사하며 사역하시기 바랍니다. 잘되어서가 아니라 잘 되지 않을 때 더 많이 행복해 하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011년 10월 19일 수요일

“저는 이런 면이 부족합니다” (10/16)

   지난주 총목자모임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천목사님이 어떤 지적사항이나, 혹은 시정을 요구할 때 표현력이 좀 부족하다는 뉘앙스(인상)를 받았습니다. 약간 개인적으로 내심 충격적이긴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교회사역 중에 교정했으면 해서 지적하는 경우, 상대방이 좀 기분 언짢게 듣게끔 어투나 표현력, 억양. 등이 표현되나 봅니다. 이 글을 읽으시면서 “아.. 맞아”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솔직히 때로 제가 아무 의미 없이 말했는데 아내가 괜히 삐쳐있는 것을 보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성격적으로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그것을 억지로 표현하다보면 어색함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제 나름대로 좋게 해석해 봅니다. 이런 내용을 목회칼럼에 쓰는 이유는 앞으로 혹시 이런 부족함이 있더라도 오해하지 않았으면 해서 저의 부족한 부분을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러니까.. 그렇게 알라”고 선전포고(?)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나름 그렇게 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몰랐으면 모를까 이제 알았기 때문에 대화하면서 “주의” 하도록 하겠습니다. 목회자도 잘못 했다면 “지적”(?)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사역하다보면 지적해야 하는 일들이 종종 있기는 합니다. 웬만해서 그런 지적을 하고픈 마음은 없는데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총대(?)를 매야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목회차원에서 지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냐면, 첫째는 본인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되어질 경우입니다. 목회자는 교회 공동체를 지켜가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런 행동을 계속할 경우 공동체 식구들이 상처를 입게 되겠다 싶을 경우입니다. 상처를 받게 되면 교회를 멀리하게 되고, 결국 교회 공동체를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희생과 섬김으로 맺어온 영혼이 어떤 한 개인으로 인해 상처를 입어 교회 공동체를 떠난다는 것은 너무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외 대부분의 경우는 그 동안 교회생활이 어떤 것인지 잘 배우지 못하거나 경험이 없어서 벌어지는 경우들입니다. 이럴 경우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을 바로 해보자는 차원에서 약간의 제안이나 지적(?)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들이 발생하더라도 특정인에 대한 미움이나 개인적인 섭섭함에서 말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는 것만큼은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목회차원에서 말해야 하는 경우로 인해 서투른 언변이 있더라도 제 성격적인 차원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나 지적하지 못하는 제 성격이 있지만 나름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잘 표현해 보도록 할 테니 자연스럽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이런 경우들이 그리 많이 발생되지는 않습니다. 제 경험상 10년에 한, 두 번 정도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그리 흔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제는 이런 경우 외에 사역 중에 이런 저런 돌발변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역은 진행되어져야 하고, 때로 진행이 잘 되지 않아 이리 저리 뛰면서 아무 생각 없이 한 곳에 집중하다가 생각 없이 나오는 말들이 상대방을 언짢게 할 수 있습니다. 변명할 마음은 없습니다. 제가 이런 면이 많이 부족합니다. 주바라기 식구들이 그 동안 많이 이해해 주셔서 부족하지만 여기까지 잘 사역해 왔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부족함을 지적해 주셔서 보다 나은 목회자가 되도록 해 주십시오.

2011년 10월 12일 수요일

추수감사주일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10/9)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추수감사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창세기 4:3∼4)일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지키던 세 절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그리고 수장절이 그것입니다(출 23:14∼16).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며, 오순절은 맥추절, 칠칠절이라고도 불리는데 첫 수확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이라고도 불리는 수장절이 수확에 대해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로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밭에서 애써 가꾼 것을 거두어들이는 한 해의 끝무렵에 수장적을 지켜야 한다”(출 23:16). 이스라엘 민족은 이 절기를 기쁨으로 지켜왔으며 감사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추수감사절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서 비롯되었습니다.경건한 삶을 추구하던 청교도 102명은 영국에서의 박해를 피해 1620년 메이플라워호에 올라 60여일의 항해 끝에 동년 11월20일 신대륙 플리머스항에 상륙했습니다. 그해 겨울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생존자들은 이듬해 가을 곡식을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청교도들은 인디언들을 초대해 추수한 곡식과 채소, 과일 등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음식을 나눠먹었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추수감사절입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1789년 헌법 제정을 축하하면서 그해 11월26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3대 대통령인 제퍼슨은 추수감사절이 영국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폐지했고, 추수감사절이 다시 지켜지게 된 것은 훗날 링컨 대통령에 의해서입니다. 링컨은 남북전쟁의 조기 종결과 국민의 단결을 위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감사일로 공식 발표했습니다. 그 후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9년 감사절을 11월 셋째 주 목요일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1908년 장로교 독노회에서 미국식 감사절을 그대로 지킬 것을 결의했습니다. 1914년 각 교파 선교부의 회의 결과에 따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조선에 입국한 것을 기념하는 뜻에서 11월 셋째주 수요일로 감사일이 개정되었고, 이후 1921년 9월10일 평양에서 열린 장로교 총회 등을 통해 11월 셋째 주일로 변경돼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추수감사절기에 대한 유감은 북미에 정착한 청교도들의 후예는 미국 땅에서 첫 번째의 수확을 감사하여 인디언 원주민들을 초청하여 추수감사절을 지켰듯이 추수감사절이 추수시기에 맞춰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의 추수감사 명절인 추석에 맞춰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지키지 못하는 한국교회 현실이 있기는 합니다. 현실적으로 추석에 맞춰 추수감사주일을 지키자니 민족 명절 추석에 민족대이동이 시작되고 온 국민이 고향으로, 고향으로 부모님을 찾아 떠나기에 정작 섬기는 본 교회에서 추수감사주일을 지키지 못해서 미국식 추수감사주일을 따르고 있다고 봅니다. 다행이 캐나다 추수감사주일은 캐나다 국경일이기도 하고 추수시기인 Thanksgiving Day에 맞춰서 감사주일을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11월에 감사절기를 지키는 미국과 다른 것은 캐나다가 미국보다 추운 지방이므로 추수가 미국보다 빨리 끝나기 때문에 10월에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어째든 캐나다 추수감사절이 추수의 시기에 맞춰 정해져 있다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감사하는 삶은 하나님의 뜻이요,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근본 마음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의미는 감사의 대상이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