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8일 월요일

목사아들..(3/27)

뉴스앤조이라는 기독교 싸이트가 있습니다. 기사 대부분이 한국 교계에 대한 쓴소리나 비평적 글들을 다뤄서인지 일반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나 교계에서는 달갑게 여겨지지 않는 싸이트이긴 합니다. 비평적이라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잘못 했으면 당연히 잘못 되었다는 지적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보수교단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뉴스앤조이 글들에 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뭐가 정말 잘못된 글이 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기사라는 것이 순수한 사실 전달이 생명이나 사실 전달 속에 기자와 주변 사람들의 의견도 포함되는 것이기에 순수한 사실만 전달되기가 쉽지 않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사건 당사자가 솔직하게 있었던 사실들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추측된 기사들이 난무한 것이기는 하지만 사건의 본질은 뉴스앤조이가 잘 다루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윤리적으로 완벽한 삶을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성경적인 기준에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고쳐져야 하는지는 말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야 우리 미래가 희망이라도 있지 않겠습니까?
 
지난주에 뉴스엔조이 기사를 보다가 눈에 띠는 것이 있었습니다. 기사 제목이 목사아들이었습니다. 저는 목사의 아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목사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생략)... 제가 어렸을 때 다녔던 교회에서는 담임목사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과도한 보호와 지원과 배려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가면 목사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친구들보다 가혹한 대우를 받곤 했습니다. 진로를 선택할 때도, 연애와 결혼을 할 때도, 목사 아들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아버지의 목회에 누를 끼치지 않게 처신하는 것이 최우선 고려 사항이었습니다. 신앙 문제도 잘 믿어지지 않는 것, 의심스러운 것들을 정직하게 털어놓거나 나눌 수 없었습니다. 물질적 가난은 일상이었습니다. 정체성의 혼란, 정서적 압박, 선택의 폭이 좁은 미래 등은 상당수 목사 자녀들이 탈선하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목사 아들인 제 조카가 한때 방황하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금도 많은 목사 자녀들이 남몰래 고민하면서 힘겨워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뭔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한편에서는 교회를 크게 키워서 자식에게 물려주는 세습 목사들이 늘고 있습니다. 세습한 아들 목사들만 따로 모이는 '황태자 클럽'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가 거느리는 교인 숫자가 1,000명에 못 미치면 그 클럽에 낄 수 없다고 합니다. 스스로는 황태자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경멸과 비웃음의 대상일 것입니다. '벌거벗은 황태자님'이라고나 할까요. 황태자들을 보면서 '불쌍하다, 안됐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죽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으면, 오죽 자기 길을 스스로 걸을 힘이 없었으면, 오죽 물려주고 물려받을 게 없었으면 주님의 몸을 주고받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소년기에 저들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 주었다면, 조금 다른 인생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작은 교회 목사 자녀들은 큰 교회 목사 부자의 세습 소식을 듣고 박탈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습니다...(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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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은 본인이 직접 목사의 자녀로 경험해 온 삶이라 그런지 현재 목사의 자녀로 자라는 자녀들에게 특별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명 황태자 클럽에 소속되어 있는 목사자녀들보다 작은 교회 목사 자녀들을 향한 글입니다. 개인적으로 제 아들에 대한 관심인 것 같아 이분의 사역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됩니다. 제 아들도 기회가 되면 최대한 멀리 떠나기 원하곤 했는데 목사아들이기에 특히 그런 마음을 갖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목사아들이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살게 하려고 나름 애썼는데 본인은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그나마 목사 딸만은 괜한 목사 딸이라는 것 때문에 괜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자라기를 바랄뿐입니다.

2011년 3월 21일 월요일

일본 열도의 아픔을 위해 기도합니다(3/20)

요즘 매일 일본 소식에 눈을 뗄수가 없습니다. 사상 유래없는 지진과 쓰나미 피해, 그리고 원전 방사선 유출 대재앙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일본 사상자와 실종자 수를 합하면 수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너무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핵원료를 담고 있는 원전 구조에 대해 아는 바는 없지만, 현재 최악의 대재앙만 막아보고자 원전에 목숨걸고 들어가 냉각수 살포작업을 하며 사투를 벌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세계평화상을 주어야 하지 않나 싶을 만큼 자기의 목숨을 건분들입니다. 원전이 있어 그 동안 원활한 전력공급에 감사했던 세계가 이제는 그로인해 공포에 떨고 있는 실정입니다. 문화가 발달하면서 그 문화 혜택을 누리며 세상 좋아졌다고..” 즐기고 있는 반면에 그 발달된 문화로 인해 상처받고, 목숨을 잃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도 우리는 계속 문화생활은 좋아지는데 삶의 여정은 더더욱 힘겹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 자국민들이 많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있던 한국인을 비롯해서 세계 외국인들은 일본을 떠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고 떠날 수 없는 일본 자국민들, 그것도 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자녀들을 잃어버려 실음 속에서 고통 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이렇게 아파하는 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자신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여기, 저기서 일본인을 위한 모금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인명구조원들이 속속히 들어가서 피해지역에서 구명과 시설 복구 작업에 힘쓰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한 것은 일본과 거리를 두고 미워하고 시기하던 나라들이나 일본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들도, 그리고 36년 동안 식민지로 고통 받아 지금까지 그 앙금이 시들지 않은 한국인까지 일본인을 돕기 위해 팔 걷어 붙이고 돕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은 경제 강대국이나 진정한 친구가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큰 재난 속에서 함께 해주는 이웃나라가 있다는 것을 일본이나 온 세계 국가들이 깊이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쓰나미는 일본말입니다. 이 말이 세계 공용어가 된 것은 그만큼 일본에 지진과 쓰나미가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나름대로 지진과 쓰나미에 대책을 잘 세워놓은 국가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뉴스에서 앵커들의 한결같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 앞에 속수무책이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고, 과학이 뛰어난 세계를 만들어 간다고 하지만 자연의 휩쓸림에는 속수무책입니다. 한없이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는 멘트입니다. 한없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러나 단지, 성난 자연 앞에 인간의 나약함만을 배운 것이 아닙니다. 경제적인 이해관계로 서로 치열한 경쟁 파트너로 살아왔지만 이렇게 생명을 위협하는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함께 울어주고 온정의 손길을 뻗어 주는 현실이 이번 자연의 재난을 통해 우리 모든 세계인들이 배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인이 먼저 도움을 주기 위해 일본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고, 남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습니다. 함께 더불어 사는 지구촌, 함께 어울려 사는 이민사회, 형제/자매를 섬기며 사는 멋진 교회 공동체, 지역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복음화하려는 섬김 공동체가 우리의 미래입니다. 고통과 실음 속에서 아파하는 일본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들도 우리의 소중한 형제요, 자매임을 기억합시다.

2011년 3월 18일 금요일

금방입니다(3/13)

세상은 빠르게 변화되고 있습니다. IT 산업은 따라가기도 벅차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급속도로 기술이 높아갑니다. 애플 3G 구입해서 사용한지 1년 조금 넘었는데 4G를 넘어서 조만간에 5G가 출시된다고 하니 약정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엄청난 속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직 별 관심 없이 살아가는 분들이 없지는 않지만 3G를 사용하고 있어서 그런지 시대에 벌써 뒤쳐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웃기는 말이기는 한데 새로운 것에 적응하기도 전에 또 다른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하는 힘겨움을 느끼고 있는 기분입니다. 세상의 기술은 새로운 것을 향하는 목마름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고 있습니다. 미국 애플사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최근 태플릿 PC 아이패드2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시켰습니다. 아직 아이패드 구입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뤄보지도 못했는데 다뤄보기도 전에 새로운 아이패드2가 출시된 것입니다.
신생아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는 사역이 목회사역입니다. 최대한 빨리 찾아가 축하해주고 기도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의 얼굴을 보는 사람이 식구를 제외하고 목회자가 처음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자라가는 모습 하나 하나가 신기하게 여겨집니다. 한 주에 한번 정도 봐서인지 매주 달라진 모습에 놀라움도 있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자라가는 속도입니다. IT 산업이 변화돼 가는 속도 못지않게 자녀들이 자라가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키우는 부모들은 그래도 아직 멀었다고 느끼겠지만 금방입니다라고 꼭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뭔가 변화되어 왔고, 변화되어 간다는 것은 속도감입니다. 속도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기에 시공간의 개념을 갖고 계시지 않아 속도감을 느끼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시공간에 갇혀 사는 유한한 존재이기에 속도감을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을 막아설 자가 없으며, 빠르게 흘러감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남은 세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인지 세월이 더 빠르게 흘러감을 피부로 느끼며 살 것입니다. 좀 더 젊게 살아보고자 운동하며 마음과 생각을 다잡아 보지만, 제한된 인생길을 누가 늘일 수 있겠습니까? 죄송한 말씀을 드리면, 세상에 가장 미련한 사람은 자기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년, 이 만년 살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분들이 없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인생의 한계를 알며 사는 것이 염세주의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한계를 모르고 사는 분들이 겁 없는 분들입니다. 한계점을 알기에 주어진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작정하여 주신 남겨진 삶과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것입니다. 용서하며 삽시다. 사랑하며 삽시다. 좀 더 넓은 마음과 이해심으로 삽시다. 좀 더 많이 섬기며 삽시다. 감사하며 삽시다. 하루, 하루 소중히 여기며 삽시다. 어두운 면도 많지만 할 수 있으면 밝은 면을 보며 삽시다. 행복하게 살려고 해도 그렇게 길지 않은 인생길입니다. 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후회스럽게만 여겨지는 인생길임을 기억합시다. 사람이 맘먹는다고 다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하시겠지만, 사람이 맘먹기 나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 정말 빠릅니다..만 기억하며 오늘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금방입니다.

2011년 3월 6일 일요일

새벽을 나서며..(3/6)

새벽에 기도하다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기도제목이 많아서라기 보다 간절한 마음이 크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1년도 시작되어 3월 첫째주일입니다. 이러다가 올해가 그냥 지나갈까 싶어 더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간절한 목회자의 기도가 인격적인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막혀진 길들이 열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벽 잠에서 일어납니다. 목장에 목자들이 목원식구들에게 쓰는 마음이 바로 이런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때를 따라 늦은 비와 이른 비를 허락하시는 하나님.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애써 사는 식구들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라 확신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려울때마다 살아온 길을 돌아보곤 합니다. 하나님이 돌보셨던 그 순간들을 되짚어 보기 위함입니다. 정말 어려운 순간마다 피할 길을 주셨고,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건들을 기억해 봅니다. 그 때마다 감사했고, 그분의 놀라운 인도하심에 놀라곤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뻐하며 주변 식구들과 나눴던 기억들이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현실을 바라보며 또 낙심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지금의 현실이 과거의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전에는 피할 길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피할 길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어 있어서 그렇지 그 때가 지금보다 더 힘들어 했으면 했지 작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염려와 두려움에 잠을 설쳤을 때를 생각하면 오늘의 현실에서 느껴지는 어려움이 그리 큰 것이 아님을 조금이나마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주변을 봅니다. 나만 힘들고, 나만 어렵고, 나만 답답하다 생각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래도 내가 제일 낫다고 말합니다. 내가 제일 형편이 안좋은 것 같은데 주변에서 내가 바라보지 못했던 브라인드 스팟(Blind Spot)을 바라보게 해 줍니다. 주변에서 위로 차 그렇게 얘기해 준다고 생각이 들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 목장모임에서 삶을 나누다보면 나보다 더 답답해하시는 분들 앞에 부끄러워 말도 못끄냅니다. 하나님은 자고자대(自高自大)하지 못하도록 가정마다 공평하게 한 가지씩 나눠주신 것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냥 현실을 받아드리고, 현실적으로 완전동의가 되지는 않지만 내 형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품어주고 기도해 주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여러 생각들이 오고가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충성스럽다는 것은 꾸준한 것을 말합니다. 당장 눈 앞에 것에 낙심하기 쉽지만, 저 멀리를 바라보고 꾸준히 주님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근시한적인 행동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짧은 생각은 실패를 거듭하게 하고, 무모한 행동은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현실이 참아낼 수 없을 만큼 힘들지만 미래를 주장하고 계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미래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미래는 내가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철저히 그분의 것이고, 그분 안에 있습니다. 힘들면 힘들수록 우리 주님께 더 많이 매달려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새벽을 나서는 목회자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마태복음 6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