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와 미국에서는 6월 세 째 일요일을 아버지 날(Father's Day)로 지킵니다. 몰(Mall)에서는 아버지들을 위한 선물 꾸러미를 진열해 놓고 몇주전부터 판매에 온 신경을 쓰고 있지만 다 상업적인 장사꾼 냄새만 날뿐입니다. 자녀들도 Mother's Day에는 몇일전부터 머리를 맞대고 준비를 시작해서 거창하게 아침부터 이벤트를 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Father's Day는 어찌 된 노릇인지 아침부터 조용하기만 합니다. 매번 아버지 날의 아버지를 위한 행사나 대접이 항시 어머니 날 때보다 소홀한 것이 우리 집만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솔직히 Mother's Day와는 판이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Father's Day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버지들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주바라기 교회에서도 Mother's Day는 지켜왔지만 Father's Day라고 해서 무슨 이벤트를 가져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올해 Father's Day에는 학생부에서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큰 것은 아닐지라도 함께 기억해 주고 섬겨준다는 것은 주님이 보시기도 흡족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정에서 어머니들이 중요한 위치에 있듯이 아버지들 또한 가장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사회생활하면서 사회나 가정에 적잖은 영향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아버지인 남편을 통해 가정을 세워가기를 원하십니다. 영적어미의 역할이 중요하듯 영적아비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믿음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저로서는 아버지의 역할을 잘 모릅니다. 드라마나 주변에서 보고 배운 것 밖에는 직접 경험해 본적이 없습니다. “이러지 않겠는가?” 하는 감으로 이야기하고 나눌 뿐입니다. 아버지로 인한 상처와 아픔이 있게 자라신 분들도 있겠지만, 막상 아버지 없이 자라보니 때로는 그런 아버지도 그립기는 합니다. 저는 아버지라고 불러본 기억도 없습니다. 그분의 얼굴은 사진을 통해서 본 것이 다입니다. 가끔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만 좋은 인상보다 안 좋은 인상만 전해주곤 했습니다. 형님이 좋지 않은 버릇을 할 때마다 아버지 닮았다고 야단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어머니에게 그런 인상만 남기고 가신 아버지가 야속도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해서 그런지 때로는 그런 아버지도 한번 뵙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란 제가 아버지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좋은 아버지로 살아가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뿐입니다. 남은 생애에서 조금 더 분발해서 후한 점수로 자녀들과 주님 앞에 서고 싶을 뿐입니다.
Father's Day를 맞이해서 목회자로서 부탁이 있다면 이민사회에서 힘겨워하는 아버지들을 향한 기도의 후원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이민사회에서 아내들이 여러 가지로 앞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인관계라든지, 언어적인 순발력이라든지, 자녀관계라든지, 주변눈치를 헤아리는 것이라든지, 남편들은 만년 초등학교 6학년이라는 말이 있듯이 때로는 어린애 같고, 이해되지 않아 답답해 할 때가 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래도 남편이요, 가장이요, 한 가정의 아버지를 통해서 믿음의 중심을 세워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세우셨듯이 가정의 머리로 아버지를 세우시고 아버지를 통해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북미에서 남자의 순위가 개(Dog) 다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웃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바라기 교회에서는 아버지들이 No.1(넘버원)으로 여김을 받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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