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30일 화요일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신앙생활” (8/14)


평생을 교회 안에서 생활해 왔습니다. 나실인(?)도 아닌데 태어나 지금까지 교회를 벗어나 생활해 본적이 없습니다. 학생 때 줄곧 집과 학교, 그리고 교회가 저의 생활영역 전부였습니다. 3년의 군대생활도 군종병으로 사역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지냈습니다. 군입대하기 전에 신학대학을 다녔고, 제대하고 바로 신학대학원으로 진학했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교회사역에 전념해 왔고, 그것이 제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일반 사회문화보다 교회 문화에 익숙해 왔고, 그것도 평신도도 아니고 20대 초반부터 목회의 길을 걸어왔기에 교회생활에는 전문가(?)일지 모릅니다. 기존교회에서는 저와 같은 사역자를 필요로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와 소통하는데는 전혀 무내안입니다. 어떤 면에서 사회경험이 많은 목회자가 목회를 잘하는 것을 보면 뭔가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사회 경험이 전혀 없는 나 같은 목회자가 개척가정교회로 개척하고 비신자를 중심해서 교회를 세워 보겠다고 나섰던 자체가 지금 생각하면 엄한 짓(?)을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주바라기 교회가 세워져 왔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기적이고, 주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조금씩 가정교회 목장사역에 익숙해 갑니다. 사회 경험이 없어서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신자들이 반갑고 섬기는 것이 행복합니다. 어떠한 말과 행동에도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참아지고, 기도하며 기다려집니다. 무엇보다 목장사역이 좋은 이유 중에 하나가 서로를 위해 기도해 준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상관없이 목장안에 식구들은 우리의 섬김과 기도의 대상입니다. 평생을 교회에서 생활해 왔지만 목장과 같이 자연스럽게 삶을 나누면서 기도제목을 듣게 되고,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해 주는 사역은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새벽기도회 나와서 기도할 때 최소한 목장에서 함께 나눈 식구들만은 자연스럽게 기도제목이 떠올라 기도하기 너무 편합니다. 누구를 위해 막연히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좋습니다. 목장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장소”입니다. 기도제목을 나누고 중보기도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께서 기도제목 이상으로 역사해 주시는 것을 삶에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시면서 한 가지 기억해 두실 것이 있습니다. 중보기도는 주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소원을 이루는 기도가 아니라, 그분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기도입니다. 그분은 신실하십니다. 성실하시고,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시면서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 가시는 분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또한 나의 때가 아니라 그분의 때에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 가실 것이라 믿으셔야 합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중에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신 말씀처럼 그분의 뜻에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중보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바라기 교회 목회자로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으로 체험하는 교회가 되기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응답하시고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확신하기는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하며 그분의 뜻을 바라 볼 수만 있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간증이 될 것입니다.

“자녀없는 빈둥지를 무엇으로 채워갈 수 있겠는가?” (8/28)


부모라 어찌할 수 없는지 아들이 온다는 날짜를 기다리며 지냈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제 자기 자리를 찾아 떠나버렸습니다.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에 다시 오겠지만 아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손님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가정을 떠나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생활하고 있어서인지 생각하는 사고도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품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일단 부모 품을 떠난 자식은 호적상으로 자식일지 모르나 또 하나의 둥지를 틀기 위해 준비하는 독립적인 객체로 확연히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부모 곁을 아쉬워하지 않는 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자녀들이 성장해 부모의 곁을 떠난 시기에 중년 주부들이 느끼는 허전한 심리가 “빈둥지 중후군”(Empty Nest Syndrome)입니다. 나중이라도 이런 증상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자녀에 대한 거리감이 필요합니다. “아직은..”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리 먼 일이 아님을 잊지 마시기 마시기 바랍니다.

가족여행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부지런히 가족여행을 다녀놔야 한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리 크게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머리가 크면 언제 다녀왔냐는 식이고, 그 당시에 부모가 큰 마음(재정적으로) 먹고 다녀온 여행인데도 아이들은 크게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이 좀 커서 여행다니면 괜찮나 싶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큰 자녀들은 부모와 함께 여행가는 자체를 지루해 합니다. 여행기간 내내 차안에서 잠을 자던지 아니면 음악만 듣습니다. 경치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사진 찍자고 하면 귀찮게 생각해서 사정해야(?) 한 장 정도 간신히 찍습니다. 자기 친구들끼리는 방안에서 밤을 새면서 놀아도 재밌게 놀면서도 부모와 떠나는 여행은 왜 이리 흥미가 없는지 묻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알면서도 늘 아쉬워하는 쪽은 부모들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할 일도 아닙니다. 요즘 시대에 자라는 자녀들의 독특한 현상도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자라왔고, 지금은 부모 곁도 아닌 멀고 먼 이국땅에서 부모 없이도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소망적인 생각은 자녀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같은 시대 속에 살아가는 부모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없는 빈둥지를 무엇으로 채워갈 수 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가족여행의 즐거움은 이제 서서히 물 건너가는 느낌입니다. 이제 부모를 떠나가는 자녀들처럼, 자녀를 떠나 주바라기 형제자매님들과 더 끈끈한 여행의 스케줄이나 짜야할 것 같습니다. 물론, 금실이 너무 좋아서 본인들만 여행 다니는데 전혀 문제없는 부부들도 있겠지만, 때로는 부부들끼리 함께 어울려 여행을 떠나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언젠가 잭 아빠(신 정묵형제)가 RV 차를 구입해서 함께 여행 가자고 말씀하셨는데 요즘 아들을 보면서 유난히 그 말씀이 새록새록 기억이 납니다. 잊지 않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우리 인생길에 자녀들이 있기에 살아가는 모습도 있지만, 교회 공동체 안에 함께 인생길을 걷는 형제자매님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자녀들만 붙들고 살아가면 버틸 수 없는 인생 공간을 여러분들과 함께 채워갈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줄 모르겠습니다. 어느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자녀들을 다 떠나보낸 가정에 주바라기 형제자매님들이 목장으로 채워지는 간절한 기도가 벌써부터 소망함으로 닺아옵니다. 바랍니다.

2011년 8월 24일 수요일

“답답하십니까? 목장 나눔에서 기도제목으로 내놓으세요!” (8/21)


희망목장 한 은진 자매님이 목장모임 때마다 기도제목으로 내 놓았던 영주권 파일넘버와 신체검사 레터가 지난주에 동시에 나왔습니다. 이제 정상적인 절차로 진행된다면 4개월 정도 안에 영주권을 받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축하할 일이고 은진자매님 가정으로서는 캐나다 정착에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주바라기 교회 식구들 중에서 뿐만 아니라 밴쿠버 지역 안에서 영주권만 나오기를 기다리는 가정이 한두 가정이 아닐 것입니다. 이민 사회에서 사람의 애를 태우는 케이스 중에 하나가 비자문제로 고민하는 가정들입니다. 한국에서 영주권을 받아서 정착하신 가정은 잘 모르겠지만, 현지에서 영주권을 기다리는 가정으로서는 힘겨운 과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솔직히 영주권을 받았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심적으로 신분적인 안정이 필요한 것이고, 무엇을 하든 이민 정착에 가장 기본적인 틀이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워퍼밋이 나왔거나 영주권을 받았을 때 우리 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마음 아픈 것은 누구는 쉽게 받는 것 같기도 한데 어떤 가정은 그 과정이 너무 어렵게 진행되는 것을 볼 때입니다. 비자문제는 늘 불확실성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비자나 이민 절차를 다루는 전문업체들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이 비자문제입니다. 늘 확률적이고 경험적인 것을 기반으로 얘기 되어질뿐입니다. 캐나다 정부 관련된 장관 정도 위치에 있는 분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은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이민 절차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답답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민 영사들의 처분만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길 외에는 아무리 답답해도 방법이 없습니다. 이민생활 17년째 살아가면서 수많은 한인 분들이 비자문제로 힘겨운 과정을 밟아가는 것을 봐왔습니다. 남들은 영주권 얻어 보려고 그렇게 애써도 나오지 않는데, 어떤 분들은 영주권을 받고도 잠시 살아보고 이민 사회가 별로 돈벌이가 안 된다고 쉽게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애쓰는 분들은 안되고, 별로 관심 없는 분들에게는 영주권을 주는 이런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면서 제가 직접 이민성 장관이 되고 싶은 마음까지 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고, 우리는 캐나다 이민 사회 현실을 받아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목회자로서 저 나름대로 이런 현실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 어느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이민과정이지만 우리가 믿고 있고,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찌할 수 없다는 것에 매여서 마음만 애태우는 현실이 더욱 안타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 있기에 하나님에게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민 전문업체보다 더더욱 인생전문가이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이민과정을 다루는 영사들의 손과 생각을 다루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주님께 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부탁은 목장에서 여러 기도제목이 있겠지만 특별히 이민과 비자문제 만큼은 목원들이 함심해서 주님의 은혜의 손길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도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여러 가지 삶의 문제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님 앞에 부탁(기도)해 보시기를 진심으로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목장 나눔에서 기도제목으로 내놓을 수만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2011년 8월 12일 금요일

“신앙생활은 습관과의 싸움”-펌(최 영기목사)(8/7)


신약교회 회복이라고 불리는 가정교회 사역 중심에 휴스톤서울교회 최 영기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의 글을 대하다보면 가정교회 핵심과 본질을 잘 집어주시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물론, 가정교회사역의 원조(?)시지만 그만큼 깊은 묵상과 고민이 나름대로 있었지 않았겠는가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분의 새로운 글은 빠짐없이 읽어보는 편입니다. 이분의 글을 통해서 때로는 깊은 통찰력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에는 이분이 쓰신 목회칼럼 중에 가정교회 목장사역에 알곡과 같은 글이 있어서 주바라기 식구들과 나누기 원해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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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제자 훈련과 가정교회 제자훈련의 차이는 전자는 성경 공부를 통해서 가르쳐 제자를 만들려 하고, 후자는 삶을 나눔으로 제자를 만들려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전자에 의존합니다. 제자를 만들기 위하여 설교와 성경공부에 전폭적으로 의존합니다. 사람이 알면 변하고, 깨달으면 바뀐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은 17 세기에 서구에서 시작된 계몽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의 근본 문제를 무지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계몽과 교육을 통하여 무지가 사라질 때에 이상적인 사회가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허망한 꿈이라는 것이 2차 대전으로 인해 처절하게 입증되었습니다. 철학의 꽃을 피웠고 민도가 높다는 독일 사람들이 유태인 학살이라는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지식과 지성이 인간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목회자들이 성도의 삶을 바꾸는 도구로 성경 공부에만 의존합니다. 사실 성경 공부가 예수 믿은 후 2-3년 동안은 삶을 바꾸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이 후에는 소위 머리만 커지는 신앙인을 만들어냅니다. 오래 된 크리스천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몰라서라기보다 옛 습관과의 싸움에서 실패하고 있어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다 할지라도, 잘못된 사고를 하고, 잘못된 감정 반응을 보이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습관에서 즉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변하기 위하여서는 이러한 악습이 주님이 원하시는 삶에 합당한 습관으로 대치되어야합니다.
습관은 한 번의 결심과 헌신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한 깨달음이나 뜨거운 성령체험은 삶의 변화에 대한 동기부여는 해주지만 삶을 실제로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삶이 변하기 위해서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연습하되 반복적으로 해야 합니다. 순종을 연습하고, 용서를 연습하고, 경건을 연습해야합니다.
옛 습관이 새 습관으로 대치되도록 만들어주는 연습의 장이 목장입니다. 목장 식구들과 부대끼는 가운데 자신이 변하는 것밖에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갈등 가운데 자신이 깨어지면서 변화를 체험합니다. 목자 목녀가 되면 삶이 극적으로 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싫은 사람 안 만날 권리, 싫은 모임 참석 않을 권리, 이웃에게 섬김 받을 권리는 다 포기하고, 참고, 이해하고, 용납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스스로를 몰아넣었기 때문에 자신이 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11년 8월 2일 화요일

목자임명 및 목장분가 후기..(7/31)

목회자와 사모가 섬기는 원형목장..
한개의 원형목장이 세워지고 부단히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째든 목장에 목원들이 세워지기를 소원했던 그때가 유난히 생각나는 분가식이었습니다.
개척가정교회로 세워진 주바라기 교회에 8개의 목장이 세워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큰 기쁨과 감사, 그리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결코 쉬운 사역이 아님에도 목자로 헌신해 주신 목자분들이 존경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 유익되는 일이 없지만, 하늘나라의 유익을 위한 헌신에 주님께서 크게 도와주실 것을 새벽마다 기도을 올립니다.

처음 한개의 목장이 두개의 목장이 되고, 세개의 목장이 되는 과정에서 또 다시 두개가 되고 네개가 되었다가 세개가 되고 하면서..
이러다가 목장이 영영 세워지지 않겠네.. 하며 힘을 잃었을 때가 있었는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걸어온 기특함, 보람, 그리고 감사가 넘치는 하루였습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포기하지 않도록 연약하지만 함께 힘이 되어준 주바라기 식구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김경미목자님과 김진규목부님이 떠났지만..
주님은 떠나지 않으시고 주바라기 사역에 함께 하심을 지난주 목자임명 및 목장분가식를 보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8개의 목장으로 늘었다는 수적인 기쁨이 아닌 8개의 목장이 섬길 VIP영혼들을 기대하는 기쁨이 더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숫자는 많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하는 것을 목회하면서 수없이 체험해 왔습니다.
특히, 유동인구가 많은 이민사회에서 수적인 계산은 이미 잊은 지 오랩니다.
가정교회 목장사역에서는 하나님 나라라는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영혼구원을 위한 섬김은 바로 이런 그림 위에서 그려질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8개의 목장을 통해 잃어버린 영혼들이 찾아지는 열매들을 기대해 봅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못해도 영혼구원 사역만큼은 “전문가”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영혼구원사역은 오로지 섬기며 기다리는 사역입니다. 왕도는 없습니다.
끊임없는 기다림과 섬김, 그리고 주님께 기도하며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재주가 통하지 않는 사역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더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피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목장사역하면 할수록 기도외에는 길이 없음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