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7일 화요일

하나님에게 섭섭한 적이 있다(?) (9/25)

이번 주에는 휴스톤서울교회 최 영기 목사님 목회칼럼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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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는 어떤 분이 얼마 전 아래와 같은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과장된 표현이 있지만 일부를 그대로 옮깁니다.
“목사님 삶을 보면, 어려서 6.25를 겪으시고, 전쟁으로 부모님을 잃으시고, 고학으로 유학 와서 자리 잡을만할 때 목회자의 길을 걸으시어, 이곳까지 오셨는데... 사모님이 투병하시게 되니... 보통 사람으로 겪기 어려운 갖가지의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 싶습니다. 그런데도 꿋꿋하게 하나님의 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해 믿음으로 나가시는 모습에 격려를 보냅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하나님께 섭섭한 점이 정말 없으신지? 그렇지 않으시고 감사하시다면, 어떻게 그렇게 감사한 마음이 되는지.. 솔직히 궁금합니다.”정직하게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았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섭섭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는가?” 결론은 “없다!”였습니다. 이 분이 글에서 아내의 투병을 언급했는데, 세계에서 제일 좋은 암센터에서 치료받게 된 것이 감사하고, 지난 15년간 건강한 삶을 살게 해주신 것이 감사하고, 아내를 위하여 기도해 주는 수많은 분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왜 내게 불만이나 원망이 없을까? 복을 권리로 생각하지 않고 은혜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누리는 것을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진 것을 잃거나 더 갖지 못할 때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소유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이미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나 섭섭함이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내 환경이 좀 더 나았었으면...”, “내 성품이 좀 달랐었으면...”,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니 하나님께서는 불만스러웠던 요인들을 다 선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더 감격하게 해주었고, 썩 행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남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었습니다.
불만족스러웠던 성품도 선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즉시즉시 사태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단점 때문에 미리미리 계획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숫자에 약하다는 단점이 세부사항을 살피는 유능한 동역자들을 찾게 만들었고, 쌀쌀맞은 성격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리더라는 평을 듣게 만들었습니다. 예, 저는 하나님에게 대한 원망이나 섭섭함이 전연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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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대하면서 저 역시 하나님에게 대한 원망이나 섭섭함이 전연 없었다는 것에 동감합니다. 30세에 홀로 되신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그렇게 자란 환경을 탓해 본적이 없습니다. 캐나다 밴쿠버에 와서 이런 저런 환경과 여건을 겪어왔지만 하나님에게 불평해 본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잘못했다면 내 실수고 내 잘못이지 하나님을 탓해본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실수투성인 저를 은혜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에게 감사할뿐입니다.

2011년 9월 23일 금요일

“가정 교회는 대안 교회가 아니다”(9/18)

로이스 바렛이 지은 <가정 교회 세우기>에서 여성 리더인 저자는 가정 교회는 대안 교회가 아니라고 합니다. 성경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성도들이 만들어 가는 교회의 참된 모델이라고 말합니다. 이분의 말은 이와 같습니다:
 
가정 교회는 언약과 헌신과 소그룹 모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다. 가정 교회는 선구자들의 대안 교회가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교회다. 이들은 그저 성경공부 모임도, 대형 교회를 꿈꾸는 임시 정착역도, 선교단체도, 영성훈련 모임도 아니다. 가정 교회는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근본적인 교회다.
 
너무나도 명쾌하게 가정교회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 때문에 마치 가정교회가 휴스톤서울교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로이스 바렛에서 시작된 것처럼 착각을 일으킬 정도입니다. 계속해서 이분의 주장을 들어 봅시다:
 
이들은 얼굴을 마주 대하기에 적당할 만큼 소수가 모여 함께 예배하고 함께 사역하는 사역자들의 공동체다.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에서는 자신의 본질을 속일 수 없다. 누구 하나 공동체 가운데 자신이 맡은 책임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게을러질 수가 없는 관계다. 규모는 차이를 만들어낸다. 작은 공동체일수록 강한 책임감을 갖고 모임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사실 한자리라도 비면 그 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것이 가정 교회다. 가정 교회는 가정에서 모이기에 적당한 수, 7~12명가량의 소그룹을 말한다. 이 교회에서는 방관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가정 교회는 교회다. 가정 교회의 역사는 길다. 초대 교회는 가정 교회였다. 성도들은 가정 교회에 모여 식사하고 주의 만찬을 나누고 찬송하였다. 가정 교회는 그저 말뿐이 아니라 가족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이 공동체는 가정에서 모이는 가족 '같은' 모임이 아니라 진짜 가족 공동체이었다. 이들은 최소 2세기 동안 계속 모였고, 많은 가정집들이 모임장소로 개조되었다.
 
무엇보다 가정교회(목장모임)만큼은 한 영혼에 대한 비중을 크게 느껴지고 있다는 것이 소중한 가치라면 가치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장모임 안에서는 누구도 배제되거나 소외될 수 없는 작은 공동체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작은 공동체이기에 서로를 잊을 수 없고, 우리 각자의 섬김과 희생이 담겨있는 지체(목원)들이기 애뜻함이 더하는 것입니다. 평생 교회 안에서 살아왔지만 목장모임처럼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곳은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성경말씀 대로 지체의식을 강조하지만 자연스럽게 지체의식을 느낄 수 있는 곳도 교회 안에서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장모임에서 그 모든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가정교회가 대안교회가 아닌 주님이 원하셨던 바로 그 교회임을 말하는 로이스 바렛의 주장이 옳습니다.

가정교회는 16세기 개혁주의 신학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초대교회의 개척자들에게 부탁하신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영혼구원사역을 기반으로 하는 신약교회를 추구합니다. 이 사역이 옳다기보다 교회의 본질적인 존재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신약교회) 교회 개척자들은 이 사역에 순종했고, VIP를 중심해서 교회를 세워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가정교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 운동이 확산되고 있음을 감사합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교회 모습인데 이제라도 교회들이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갈급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1년 9월 12일 월요일

“삶공부 신청하세요!”(9/11)

내일이 한국에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추석 명절입니다. 명절이라고 부모님을 찾아뵐 만큼 여유가 있지 못하는 곳이 이민사회입니다. 명절에 귀성객들로 붐비는 소식을 접할때마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께 죄송하고,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불효 같은 마음이 나이가 들면서 더 해옵니다. 얼만 살날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들지만, 기껏해야 명절 때 전화 한번 드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렇다고 한국 간다고 뾰족하게 뭘 효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물론, 전화보다는 직접 얼굴을 뵐 수 있는 것이 더 낫기는 하겠지만 어디에 있든 자식들이 건강하게 살아가 주면 그것만큼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없다고 봅니다. 부모보다 앞서 세상을 떠나는자식만큼 부모에게 불효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위로삼아 이번에도 찾아뵙지 못하지만 안부삼아 전화 인사드렸습니다. 주바라기 식구들도 형편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전만해도 추석 명절이 되면 작게, 작게 모여서 추석 송편을 만들어 먹곤 했습니다. 아이들과 오순도순 모여서 색색별로 송편을 빚어 만들면서 추석 분위기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송편이라 모양과 크기도 다양했습니다. 이민 사회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색다른 경험입니다. 아이들에게도 추석명절을 경험케 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아이들이 부쩍 크면서 이런 모임이 없어졌습니다. 아이들도 관심이 없어졌고, 부모들도 바쁜 생활 속에서 잊혀져 가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은 있지만, 아이들도 공부하느라 바쁘고 우리의 분주한 삶의 현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송편은 빚지 못해도 추석 명절 때 한 곳에 모여서 음식을 나누며 친교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은 있습니다. 올 해 추석은 자연스럽게 전 아인 돌 모임으로 추석 겸해서 모일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특별히 진 미향목자님 가정에서 집을 오픈해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달 1일에는 김 우리 돌 모임으로 원 경연목자님 가정에서 집을 오픈해서 모임을 갖게 됩니다. 원 목자님의 집이 너무 멀어서 주일예배 후에 모임이 어려워 토요일에 모이게 되는데 이때는 연합목장모임 겸해서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예배 후에 삶공부 신청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가을이 시작되면서 삶공부 오픈을 합니다. 삶공부는 지정의(知情意) 중에 지()를 다루는 시간입니다. 인간은 세 가지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지정의(知情意)입니다. 알고, 느끼고, 원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속성이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도 세 가지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진정한 회심이나 영적 성장은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온전하게 이루어집니다. 가정교회는 지정의 이 세 가지를 골고루 만져줍니다. 목장 모임은 정적인 면을 만족시켜 줍니다. 감동을 주는 섬김에 의하여 교회에 대한 거부감과 예수 믿는 사람에 대한 반감이 사라지게 만들어 복음에 마음 문을 열게 만듭니다. 삶 공부는 지적인 면을 만족시켜 줍니다. 복음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어서 신앙의 근거를 마련해 줍니다. 주일 연합 예배는 의지적인 면을 만족시켜 줍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도록 하고 결단과 결심을 하게 만듭니다. 이런 면에서 이번에 오픈하게 되는 삶 공부가 여러분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원합니다. 특히, 생명의 삶공부는 주바라기 교회 한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기초 입문 과정입니다. 부담을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부담을 덜어 드리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주바라기 교회가 세워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중요한 시간입니다. 꼭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다(?)”(9/4)

최근에 잘 참여치 못했던 캐나다 시찰회 모임과 총신동문회 모임을 다녀왔습니다. 가정교회 목회자 모임은 우리가 목장모임 하듯 식사한 후에 찬양하고 각 목회자의 삶과 기도제목을 나누고 함께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시찰회나 동문회 모임 분위기는 조금 다릅니다. 시찰회는 대부분 각 지교회에서 불거진 이슈들을 다루거나 아니면 사무처리 일들을 다룹니다. 그리고 동문회는 전적으로 친교위주로 모임을 갖고 헤어집니다. 두 모임에서 얻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 동안 몰랐던 밴쿠버 주변 목회자들의 동향이나 교회 소식들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주변교회 상황에 조금 어두운 편입니다. 이런 모임에나 가야 한 가지씩 소식을 듣게 됩니다. 어느 교회 목회자가 교회를 사임하고 다른 교회로 사역지를 옮겼다느니.. 교회가 시끄러워져서 이런 저런 문제가 불거졌다느니.. 밴쿠버 교민 이만 오천명이(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빠져서 각 교회마다 교인들이 줄었다느니.. 여러 가지 다양한 밴쿠버 교회 소식들을 가만 앉아만 있어도 저절로 듣게 됩니다. 그 중에 가장 안타까운 소식은 목회자가 교회를 떠나간 소식들입니다.
 
어느 교회든 교인들이 이동하는 것처럼 목회자도 사역지를 옮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미국이나 한국 대형교회에서 청빙 받아 떠나가시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교인과 갈등으로 목회자가 목회지를 떠나는 경우입니다. 어느 경우든 목회자가 목회지를 떠나는 것은 성도나 목회자에게 큰 아픔이고, 상처일 수 있습니다. 늘 말씀 드리지만 가장 축복된 목회자는 교회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한 교회에서 평생 목회하고 은퇴하는 목회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목회자에게 뿐만이 아니라 한 교회 교인들에게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똑 같은 얼굴 평생 보며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한 목회자와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서로 영적인 교통을 나누며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닙니다. 목회자가 능력이 없다고 쫒아낸다면, 설사 능력 있는 목회자가 왔다 할지라도 그 능력(?)에 한 교회에 평생 머물러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교인들도 될 수 있는 한 목회자를 세워주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서 평생 맞춰가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듯이 교회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목회자와 교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모아주신 주님의 뜻을 따라 서로 섬겨갈 수 있다면 행복한 신앙생활을 살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안 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사업할 때 돈 벌 자신이 없었지만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본연의 일을 열심히 하면 선물로 주어지는 게 돈이라고 마음먹고 본질에 충실하려고 하다 보니 결국 돈을 벌게 됐다"는 말을 했는데 전적으로 동감하는 부분입니다. 이번 동문회 모임에서 몇 분에게 가정교회 사역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특별히 이민교회 목회를 경험하면서 힘들어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생각보다 교회 부흥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금방 될 것 같았는데 왔다가도 나가는 분들이 있어서 힘빠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안 철수씨가 우리에게 지혜를 줍니다. 목회는 교회 부흥이 목적이 아니라 본연의 일, 즉 목회 본질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회 본질적인 사역에 충실하기 보다는 교회 부흥이 안되서 힘들어 한다면, 그 힘듦이 목회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목회자의 욕심에서 오는 결과라고 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교회 부흥과 성장이 아닙니다. 교회 본질적인 사역을 붙드는 것입니다. 이 본질적인 사역이 영혼구원하는 사역임을 가정교회는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