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3일 금요일

“가정 교회는 대안 교회가 아니다”(9/18)

로이스 바렛이 지은 <가정 교회 세우기>에서 여성 리더인 저자는 가정 교회는 대안 교회가 아니라고 합니다. 성경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성도들이 만들어 가는 교회의 참된 모델이라고 말합니다. 이분의 말은 이와 같습니다:
 
가정 교회는 언약과 헌신과 소그룹 모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다. 가정 교회는 선구자들의 대안 교회가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교회다. 이들은 그저 성경공부 모임도, 대형 교회를 꿈꾸는 임시 정착역도, 선교단체도, 영성훈련 모임도 아니다. 가정 교회는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근본적인 교회다.
 
너무나도 명쾌하게 가정교회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 때문에 마치 가정교회가 휴스톤서울교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로이스 바렛에서 시작된 것처럼 착각을 일으킬 정도입니다. 계속해서 이분의 주장을 들어 봅시다:
 
이들은 얼굴을 마주 대하기에 적당할 만큼 소수가 모여 함께 예배하고 함께 사역하는 사역자들의 공동체다.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에서는 자신의 본질을 속일 수 없다. 누구 하나 공동체 가운데 자신이 맡은 책임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게을러질 수가 없는 관계다. 규모는 차이를 만들어낸다. 작은 공동체일수록 강한 책임감을 갖고 모임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사실 한자리라도 비면 그 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것이 가정 교회다. 가정 교회는 가정에서 모이기에 적당한 수, 7~12명가량의 소그룹을 말한다. 이 교회에서는 방관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가정 교회는 교회다. 가정 교회의 역사는 길다. 초대 교회는 가정 교회였다. 성도들은 가정 교회에 모여 식사하고 주의 만찬을 나누고 찬송하였다. 가정 교회는 그저 말뿐이 아니라 가족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이 공동체는 가정에서 모이는 가족 '같은' 모임이 아니라 진짜 가족 공동체이었다. 이들은 최소 2세기 동안 계속 모였고, 많은 가정집들이 모임장소로 개조되었다.
 
무엇보다 가정교회(목장모임)만큼은 한 영혼에 대한 비중을 크게 느껴지고 있다는 것이 소중한 가치라면 가치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장모임 안에서는 누구도 배제되거나 소외될 수 없는 작은 공동체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작은 공동체이기에 서로를 잊을 수 없고, 우리 각자의 섬김과 희생이 담겨있는 지체(목원)들이기 애뜻함이 더하는 것입니다. 평생 교회 안에서 살아왔지만 목장모임처럼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곳은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성경말씀 대로 지체의식을 강조하지만 자연스럽게 지체의식을 느낄 수 있는 곳도 교회 안에서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장모임에서 그 모든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가정교회가 대안교회가 아닌 주님이 원하셨던 바로 그 교회임을 말하는 로이스 바렛의 주장이 옳습니다.

가정교회는 16세기 개혁주의 신학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초대교회의 개척자들에게 부탁하신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영혼구원사역을 기반으로 하는 신약교회를 추구합니다. 이 사역이 옳다기보다 교회의 본질적인 존재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신약교회) 교회 개척자들은 이 사역에 순종했고, VIP를 중심해서 교회를 세워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가정교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 운동이 확산되고 있음을 감사합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교회 모습인데 이제라도 교회들이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갈급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