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2일 화요일

“100점짜리 인생” (11/20)

“어떻게 살면 100점짜리 인생이 되는지”에 관한 좋은 글을 보았습니다. A=1, B=2, C=3, ~ Z=26이라고 보았을 때 100점이 되는 단어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예를 들면, MONEY이라 했을 때 M+O+N+E+Y(13+15+14+5+25) 모두 합하면 72점이 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러 많은 영어 단어 중에 ATTITUDE(태도)가 정확히 100점이 된다고 합니다. 태도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 서두에 재미있는 방식을 끌어드리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인생의 삶에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인생 성공 법칙에는 능력, 노력, 태도가 핵심요소이며 그중에 태도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비이기성, 합리성, 정직성, 공동의식, 그리고 신뢰등을 말합니다. 특히, “태도에서 부정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성공했다고 할지는 모르지만 사회에 폐를 끼치기 때문에 결국 성공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매우 인상적이고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이런 태도가 중요하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의 태도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던 모습이야 말로 진짜 100점짜리 인생을 살아가는 겸손한 태도가 아니셨나 싶습니다.
· 비이기적인 태도
· 합리적인 태도
· 정직한 태도
· 공동의식을 가지는 태도
· 신뢰받는 태도
이러한 태도가 있어야 100점짜리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이권을 위해서 모여진 모임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영광과 그분의 뜻(사역)을 이루고자 함께 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요, 자녀들입니다. 비이기적인 모임입니다. 개인과 특정인 편에 서서 사역하는 모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 편에서 모여진 합리적인 모임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서 있기에 무엇보다 투명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모여진 모임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공동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공동의식을 가지고 함께 영혼구원사역을 위해 모여진 모임입니다. 이 사역을 위해 서로 믿고 따르며 하나님을 신뢰하듯 서로를 신뢰하는 모임입니다. 이런 교회 공동체이기에 100점짜리 인생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언제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세상 종말이 오기 전에 우리에게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개인의 종말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적인 100점짜리 인생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 100점짜리 그리스도인의 인생을 인정받는다면 이것보다 더 큰 축복과 기쁨이 없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100점이라야 7,80년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100점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의 태도 역시 비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며 정직하게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서로 신뢰하며 영혼구원을 위한 목장사역을 감당한다면 온전히 100점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에게 책망은 듣지 않을만큼 적잖은 점수를 얻게 되지 않을까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구원을 넘어 하나님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이 있는데 그 상급에 따른 높은 점수 배당은 모르긴 몰라도 “영혼구원”사역일 것입니다. 인생성공의 100점짜리 삶의 태도를 가지고 VIP를 섬긴다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도 100점짜리 인생일 것이라 인정받을 것입니다.
Change your ATTITUDE.. And You change your life!!

2011년 11월 16일 수요일

“신약교회를 세운다는 확신과 자부심” (퍼옴)(11/13)

지난주에 매월 첫 주에 모이는 총목자모임이 있었습니다. 총목자모임은 목자들만의 목장모임입니다. 교회 전반적인 사역을 나누기도 하지만 목자들의 개인의 삶을 나누게 됩니다. 목자님들의 사역과 삶 나눔을 들으면서 “개척가정교회인 주바라기 교회 목장사역이 이제 서서히 안정된 궤도로 진입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기존교회 사역자들과 비교해도 절대 쉽지 않은 영혼구원 사역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감당하고자 하는 자원함과 기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 사역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귀한 사역이고, 가치 있는 것이기에 아틀란타한인침례교회 김 재정 목사님의 목회칼럼을 통해서 가정교회 사역의 본질적인 의미를 목자님들과 목원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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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크기와 숫자에 의해 평가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세상적 평가 기준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교회와 교회 식구들과 목회자들이 성공한 교회가 되기 위해 경쟁과 패배의식에 시달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교회가 가진 정신과 방향에 의해 평가 받아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을 바르게 붙잡고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교회가 되면 그것이 참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한 목사님이 사례발표를 하였습니다. 가정교회를 시작한지 5년이 지나기까지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한명도 구원받는 사람도 생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았더니 이제 5년이 넘어 가면서 한명씩 구원받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5년이 지나도록 한명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성장이 안되었지만 여전히 가정교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교회의 정신과 방향을 분명히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를 하면 숫자적인 부분에서는 감소나 정체가 될 수 있습니다. 성장이 되어도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이루어집니다. 수평이동을 막고 VIP에 집중을 하고 있고 또 전도하는 일이 쉽게 열매가 맺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숫자적인 열세와 그에 따르는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소원 하시는 교회를 세운다는 분명한 확신과 자부심이 있어야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목회자뿐 아니라 교회 식구들이 신약교회를 세운다는 분명한 확신을 가질때 가시적인 부흥과 성장에서 자유함을 가질수 있습니다. 그러한 확신에서 희생과 대가를 치루고자 하는 결단이 생겨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소원 하시는 교회를 세운다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잘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합니다. 보람도 있고 좌절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지나가는 과정입니다. 눈에 보이는 열매나 결과에 좌우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정작 조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을 잃어버리고 세상적인 기준에 타협하고 적당히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여건 속에서도 교회의 올바른 정신과 방향을 붙잡고 세상적인 기준에 위축 당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걷는 길이 조금은 힘들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길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권이고 행복입니다. 신약교회를 세우기 위해 댓가를 치루며 묵묵히 한길을 걷는 교회 식구들로 인해 감사함이 있습니다.

2011년 11월 8일 화요일

“올해가 가기 전에..” (11/6)

지난 번 나 목사님(갈보리교회)께서 조건이 좋은 리스(Lease) 복사기가 있는데 교회에 제공하는 설명회가 있다고 참여여부를 묻는 전화를 주셨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니 5년 계약해서 매월 리스비용이 $300정도 하는데 리스비용은 그대로 되돌려주고, 5년후에는 리스한 복사기가 교회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복사기 리스비용은 전혀 없고 카피(Copy) 사용료만 내면, 5년후에는 복사기가 교회 것이 되는 조건입니다. 카피(Copy) 비용도 장당 1센트도 되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는 저렴한 가격입니다. 누가 들어도 이해되지 않는 조건이라 혹시 사기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확실히는 잘 모르겠지만, 회사 본인들의 말에 의하면 본 회사(DocuSystems)가 또 다른 리스회사와 연관해서 비영리단체에 복사기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정부에서 얼마만큼의 지원을 받나 봅니다. 어째든 얼마 전에 복사기가 들어와서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 복사기를 신청할 때 원 경연 목자님이 저 대신 설명회에 참여해서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는 복사기가 이미 들어와서 잘 사용하고 있다고 듣고 있는데, 신청한지 한 달이 넘어 가는데도 복사기를 제공하겠다는 연락이 없었습니다. 리스하는데 소정의 절차가 있기는 하겠지만 주바라기 교회가 너무 늦는 듯 했습니다. 교회 재정적인 상태도 중요했는지 신 정묵 회계사님을 통해 확인하고 팩스(Fax)로도 보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락조차 오지 않는 것입니다. 몇 번의 걸쳐서 언제쯤 복사기가 도착하느냐고 물었지만 알겠다고만 했지 결과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주바라기 교회 재정상태가 리스회사에서 요구하는 것만큼 그리 많은 1년 예산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러다보니 리스회사에서 결과를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간에서 일하는 세일즈맨만 저에게 볶였던(?) 것입니다. 엄청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 갑자기 재정상태가 부족하다는 결과를 듣게 되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교회 재정이 이정도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결과에 새삼 가난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안된다는데 무조건 달라고 떼쓸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쉽지만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담당 세일즈맨이 주바라기 교회에 대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지 본인이 사용해 왔던 동일한 기종의 데모(Demo)용을 아무 리스조건(Unconditional)도 없이 그냥 주바라기 교회에 제공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뜻밖에 횡재(?)였습니다. 요즘 복사기만 바라봐도 흐뭇하고 감사한 복덩어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잘 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계획대로(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들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안된다고 해서 정말 안되는 일이 아닌 것임을 이번 복사기가 교회에 오는 과정을 통해서 다시한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안되는 줄 알았는데 더 좋은 조건으로 복사기를 받았으니 말입니다. 나중에 리스 비용을 다시 되돌려받는다고 해도 리스비용을 자동이체 시켜놓으면 약간 불안한 재정상태라 솔직히 부담이기는 했습니다. 거져와서 사용료만 내고 5년이 지나면 주바라기 교회 소유가 되는 조건입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늘 그분의 신실함을 믿지만 이렇게 돌려 돌려서 좋은 것을 준비해 주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분의 신실함은 변함이 없으신데 우리 믿음의 한계입니다. 솔직히 기도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끊임없이 기다리게 하시는 그분이 야속하기까지 합니다.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는 것도 아니고, 북박쳐 오르는 우리의 감정이 숨겨지지 않습니다. 힘들고 짜증나고, 때로는 화가 치밀어 올라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우리의 인내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뭐라도 해보고 싶지만 해 볼 수 있는 마땅한 대책도 없이 사방이 꽉막혀 있는 현실을 느낍니다. 어쩌겠습니까? 신실하신 주님을 믿고 기다려봅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올해가 가기전에.. 

2011년 11월 1일 화요일

“주바라기 교회가 캠프를 떠나는 이유?”(10/30)

주바라기 교회 개척 초기부터 캠프를 다녔습니다.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캠프 장소 구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캠프장소 찾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고, 교인들이 많기 때문에 캠프를 가면 중고등부나 청년부들이 가지 교인 전체가 캠프를 떠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주바라기 교회는 1년에 3번 정도 캠프를 다니고 있습니다. 재정적으로 허락만 되면 4번이라도 다니고 싶은 마음이고, 아직까지는 전교인 캠프를 갖는 것에 문제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교인 수와 상관없이 전교인 캠프는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이번 겨울캠프 장소가 결정이 되었습니다. 캠프 장소가 의외로 좋으면 격년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웬만하면 갔던 장소는 겹치지 않게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니려고 합니다. 이 냥이면 새로운 장소를 경험해 보고 싶고, 넓은 밴쿠버 지역을 캠프를 통해 한 번씩 돌아보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가족별로 가보고 경험해 보지 못하는 지역을 돌면서 주바라기 식구들과 좋은 추억도 만들어 가고 싶은 의도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만 없으면 밴쿠버아일랜드 주변 섬으로도 다녀보고 싶습니다. 제 자신도 캠프 자체를 좋아하지만 주바라기 학생들에게도 어릴 적부터 공동체 삶을 통해 SN(Social Networking)인 공동체 훈련을 갖게 하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주바라기 학생들의 관계가 원만한 것도 지금까지 다녀온 캠프 영향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번에 겨울캠프로 보낼 장소는 교회 건물 같으면서도 숙식이 가능한 수련회 장소입니다. 가장 좋은 점은 한 건물 안에서 모두가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닥은 온돌로 되어 있어서 오랜만에 한국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침대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1박2일이라 구태여 잠이 오지 않는데 억지로 주무실 필요는 없습니다. 밤새워 그 동안 못한 이야기 꽃을 피우시기 바랍니다. 장소 거리도 코크틀람 센터에서 50분 정도 소요 됩니다.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단점이 있기는 합니다. 왜냐하면 들락날락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한번 오시면 캠프가 마칠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거리는 50분이지만 왔가갔다 하시면 게스(Gas)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 예배 후에 떠나게 됩니다. 그 다음 날이 월요일 Boxing Day(26일)라 대부분의 회사가 휴일이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아침 일찍 움직여서 미리 떠나시면 될 것입니다.

그 동안 주바라기 공동체가 캠프를 즐기며 다닌 진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목장에서 수고하고 섬기는 영혼구원 사역에 힘을 보태 주려는 의도입니다. 목장 안에 계신 VIP 식구들을 교인 전체가 만나는 기회를 삼고, 식사와 1박을 하면서 좀 더 식구 같은 친숙한 자리를 마련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만의 교제의 자리가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분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매주 광고 드리지만 이번 겨울캠프에 한 명이라도 VIP 식구가 참여해서 주바라기 공동체가 캠프를 떠나는 이유가 더욱 분명해지기를 소원합니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 우리만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합니다. 한 순간이라도 “나를 통해 주님을 만나는 구원의 기회”가 주워진다면 그것보다 더 큰 행복과 축복이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또 확신합니다. 겨울캠프가 이제 두 달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떠날 준비는 하루 이틀이면 준비되겠지만 VIP를 위한 준비는 지금부터 시작되었으면 합니다. 남겨진 두 달 동안 VIP 초청을 위해 마음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2011년 10월 25일 화요일

“탈진(Burn-out)-너무 겁낼 것 없다(?)” (10/23)

가정교회 세 가지 축이 있습니다. 첫째는 은혜로운 목장연합예배(주일예배)이고, 둘째는 삶 공부, 그리고 셋째는 매주 모이는 목장모임입니다. 이중에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겨질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단지, 세 가지 중에 개척가정교회에서 우선적인 집중사역이 뭐냐고 묻는다면 “목장사역”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개척가정교회 시작이 원형목장 하나인데 교회에 모일 수 있는 교인이 그리 많지 않고, 삶공부 참여도도 낮기 때문입니다. 경험적으로 목장사역은 개척가정교회 사역에 기반이 되고, 목장사역이 든든해져 가면서 개척가정교회는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목장사역은 개척가정교회가 세워져 가는데 큰 디딤돌 역할이 됨을 경험해 왔습니다. 개척가정교회 뿐만 아니라 가정교회로 전환해서 사역해 가는 기존교회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목장사역이 든든해 가면 가정교회가 힘을 얻어가지만, 목장사역이 약해지면 가정교회로 전환한 교회라 할지라도 그 사역의 기본적인 틀이 무너져갈 수 있습니다. 개척가정교회가 세워지느냐? 가정교회로 전환한 교회의 가정교회 틀이 무너져 가느냐?는 목장사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문제는 그 목장사역을 감당하고 계신 목자목녀들과 목원들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정교회 사역하시는 목회자들이 모이면 나눔의 주제가 “목자목녀들의 탈진”입니다. 개인적으로 개척가정교회로 원형목장을 경험한 저로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일반(기존)교회 사역을 넘어서는 희생과 헌신이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사역이 목장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정교회에서 사역하시는 목자목녀들이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 이유입니다. 그만한 희생과 헌신이 있기에 가정교회사역에서 수 많은 영혼들의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혼구원을 위해 끊임없는 섬김을 감당하는 목자목녀들을 축복해 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개척가정교회 경험자로서, 그리고 주바라기 공동체 목회자로서 솔직하고 싶고, 숨기고 싶지 않은 속내가 있습니다. 왜 목회자들은 목자목녀들의 탈진을 두려워하는가?입니다. 목자목녀들의 탈진으로 이분들의 영적인 상태를 염려하는 것인가? 아니면 교회와 목회자체가 잘 되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목자목녀들의 탈진은 현실입니다. 외면할 수 없는 이분들의 실질적인 영적 상태입니다. 교회와 목회사역을 위해 그 모든 부담과 지침과 탈진을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미명하에 그냥 묻고 가야하느냐는 것입니다. 목자와 목녀들도 사람이고, 얼마든지 지칠 수 있고, 탈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부목회자로서 사역해 오면서 늘 가슴에 안고 있었던 아픔이 교회 건축을 위해서 수십명의 교인들이 상처를 안고 떠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사역이 사람을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포기할 수 없는 목회신념입니다. 사역하다보면 목회자도 탈진하는 경우가 있는데 평신도도 예외는 아니라고 봅니다. 자신의 능력보다 더 많은 일을 하다보면 누구에게든 올 수 있는 현상입니다. 탈진.. 너무 겁낼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위하고, 교회사역일지라도 사람을 우선해서 해결해 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사역이 잘 안 된다 할지라도 이 순간에 주님의 가장 큰 관심은 사역이 아니라 그 개인의 영혼이라고 믿습니다. 이 문제가 충분히 배려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경우 목자사역을 내려놓으면 목자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라고 봅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사역해 왔다고 보지만, 앞으로도 누군가가 힘든 상황이 오면 교회 사역이전에 당사자의 마음이 회복되도록 조치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이런 탈진현상 없이 행복함으로 사역해 가는 것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안된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세 가지 팁(Tip)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공과 실패에 대한 세상적인 관점을 버리고 사역하면 됩니다. 세상적인 관점은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맡은 사역에 충성하는 사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영혼구원에 대한 간절한 소원함을 가지고 사역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붙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맺히는 열매들이 있습니다. 그 맛이 꿀맛입니다. 마지막으로 행복하고 감사하며 사역하시기 바랍니다. 잘되어서가 아니라 잘 되지 않을 때 더 많이 행복해 하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011년 10월 19일 수요일

“저는 이런 면이 부족합니다” (10/16)

   지난주 총목자모임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천목사님이 어떤 지적사항이나, 혹은 시정을 요구할 때 표현력이 좀 부족하다는 뉘앙스(인상)를 받았습니다. 약간 개인적으로 내심 충격적이긴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교회사역 중에 교정했으면 해서 지적하는 경우, 상대방이 좀 기분 언짢게 듣게끔 어투나 표현력, 억양. 등이 표현되나 봅니다. 이 글을 읽으시면서 “아.. 맞아”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솔직히 때로 제가 아무 의미 없이 말했는데 아내가 괜히 삐쳐있는 것을 보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성격적으로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그것을 억지로 표현하다보면 어색함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제 나름대로 좋게 해석해 봅니다. 이런 내용을 목회칼럼에 쓰는 이유는 앞으로 혹시 이런 부족함이 있더라도 오해하지 않았으면 해서 저의 부족한 부분을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러니까.. 그렇게 알라”고 선전포고(?)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나름 그렇게 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몰랐으면 모를까 이제 알았기 때문에 대화하면서 “주의” 하도록 하겠습니다. 목회자도 잘못 했다면 “지적”(?)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사역하다보면 지적해야 하는 일들이 종종 있기는 합니다. 웬만해서 그런 지적을 하고픈 마음은 없는데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총대(?)를 매야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목회차원에서 지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냐면, 첫째는 본인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되어질 경우입니다. 목회자는 교회 공동체를 지켜가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런 행동을 계속할 경우 공동체 식구들이 상처를 입게 되겠다 싶을 경우입니다. 상처를 받게 되면 교회를 멀리하게 되고, 결국 교회 공동체를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희생과 섬김으로 맺어온 영혼이 어떤 한 개인으로 인해 상처를 입어 교회 공동체를 떠난다는 것은 너무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외 대부분의 경우는 그 동안 교회생활이 어떤 것인지 잘 배우지 못하거나 경험이 없어서 벌어지는 경우들입니다. 이럴 경우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을 바로 해보자는 차원에서 약간의 제안이나 지적(?)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들이 발생하더라도 특정인에 대한 미움이나 개인적인 섭섭함에서 말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는 것만큼은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목회차원에서 말해야 하는 경우로 인해 서투른 언변이 있더라도 제 성격적인 차원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나 지적하지 못하는 제 성격이 있지만 나름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잘 표현해 보도록 할 테니 자연스럽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이런 경우들이 그리 많이 발생되지는 않습니다. 제 경험상 10년에 한, 두 번 정도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그리 흔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제는 이런 경우 외에 사역 중에 이런 저런 돌발변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역은 진행되어져야 하고, 때로 진행이 잘 되지 않아 이리 저리 뛰면서 아무 생각 없이 한 곳에 집중하다가 생각 없이 나오는 말들이 상대방을 언짢게 할 수 있습니다. 변명할 마음은 없습니다. 제가 이런 면이 많이 부족합니다. 주바라기 식구들이 그 동안 많이 이해해 주셔서 부족하지만 여기까지 잘 사역해 왔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부족함을 지적해 주셔서 보다 나은 목회자가 되도록 해 주십시오.

2011년 10월 12일 수요일

추수감사주일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10/9)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추수감사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창세기 4:3∼4)일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지키던 세 절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그리고 수장절이 그것입니다(출 23:14∼16).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며, 오순절은 맥추절, 칠칠절이라고도 불리는데 첫 수확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이라고도 불리는 수장절이 수확에 대해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로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밭에서 애써 가꾼 것을 거두어들이는 한 해의 끝무렵에 수장적을 지켜야 한다”(출 23:16). 이스라엘 민족은 이 절기를 기쁨으로 지켜왔으며 감사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추수감사절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서 비롯되었습니다.경건한 삶을 추구하던 청교도 102명은 영국에서의 박해를 피해 1620년 메이플라워호에 올라 60여일의 항해 끝에 동년 11월20일 신대륙 플리머스항에 상륙했습니다. 그해 겨울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생존자들은 이듬해 가을 곡식을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청교도들은 인디언들을 초대해 추수한 곡식과 채소, 과일 등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음식을 나눠먹었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추수감사절입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1789년 헌법 제정을 축하하면서 그해 11월26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3대 대통령인 제퍼슨은 추수감사절이 영국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폐지했고, 추수감사절이 다시 지켜지게 된 것은 훗날 링컨 대통령에 의해서입니다. 링컨은 남북전쟁의 조기 종결과 국민의 단결을 위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감사일로 공식 발표했습니다. 그 후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9년 감사절을 11월 셋째 주 목요일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1908년 장로교 독노회에서 미국식 감사절을 그대로 지킬 것을 결의했습니다. 1914년 각 교파 선교부의 회의 결과에 따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조선에 입국한 것을 기념하는 뜻에서 11월 셋째주 수요일로 감사일이 개정되었고, 이후 1921년 9월10일 평양에서 열린 장로교 총회 등을 통해 11월 셋째 주일로 변경돼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추수감사절기에 대한 유감은 북미에 정착한 청교도들의 후예는 미국 땅에서 첫 번째의 수확을 감사하여 인디언 원주민들을 초청하여 추수감사절을 지켰듯이 추수감사절이 추수시기에 맞춰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의 추수감사 명절인 추석에 맞춰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지키지 못하는 한국교회 현실이 있기는 합니다. 현실적으로 추석에 맞춰 추수감사주일을 지키자니 민족 명절 추석에 민족대이동이 시작되고 온 국민이 고향으로, 고향으로 부모님을 찾아 떠나기에 정작 섬기는 본 교회에서 추수감사주일을 지키지 못해서 미국식 추수감사주일을 따르고 있다고 봅니다. 다행이 캐나다 추수감사주일은 캐나다 국경일이기도 하고 추수시기인 Thanksgiving Day에 맞춰서 감사주일을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11월에 감사절기를 지키는 미국과 다른 것은 캐나다가 미국보다 추운 지방이므로 추수가 미국보다 빨리 끝나기 때문에 10월에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어째든 캐나다 추수감사절이 추수의 시기에 맞춰 정해져 있다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감사하는 삶은 하나님의 뜻이요,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근본 마음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의미는 감사의 대상이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2011년 10월 6일 목요일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며.. (10/2)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매주 감사헌금으로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시는 주님께 감사의 제목으로 드리고 있지만 추수감사주일은 특별히 한 해, 한 해를 인도해 주시는 것에 특별한 날을 정하여 모든 성도가 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나는 올 해 특별히 감사할 거리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아래 글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신의 집에 전기가 들어온다면 세상에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20억이 넘는 사람들보다, 집에 수돗물이 나온다면 아무 물이나 마시는 10억이 넘는 사람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루 1불 이상으로 살고 있다면 1불 이하로 살아가는 12억명의 사람보다, 하루 한 끼라도 따듯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8억 명의 영양실조로 고통 받는 사람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당신의 몸이 건강하다면 이번 주를 넘기지 못할 1백만 명의 환자보다, 한 번도 전쟁의 위험이나 수용소의 외로움, 고문, 굶주림의 쓰라림을 겪지 않았다면 5억 명보다, 체포, 협박, 학대, 고문,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 없이 교회에 나왔다면 세상의 30억 명보다, 냉장고에 음식이 있고, 당신의 몸에 옷이 걸쳐져 있거나,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세계 인구의 75%보다 감사할 조건이 많은 사람입니다. 더욱이 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지금 혼자가 아니라면 보기 드물게 감사할 사람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당신이 축복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세상에 글을 읽을 줄 모르는 20억의 사람들보다 더 감사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도 스스로 감사의 조건을 찾지 못한다면 그런 삶은 문제가 많은 삶이라 생각됩니다. 밴쿠버 이민생활이 결코 녹녹치만은 않지만, 아무리 이민생활이 어렵다 해도 위에 적힌 사람들보다는 우리의 환경이 훨씬 낫다고 봅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감사하는 여부는 주변 환경에 달린 것이 아니고, 마음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이 만족하며 산다는 것은 한도 끝도 없는 것입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떼부자로 산다고 한들 진정 감사함으로 사는 가정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부자면 부자일수록 수심이 가득한 가정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어느 정도 있어야 걱정없이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감사는 뭐가 있고, 없어서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적인 영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하나님 한분의 은혜로 감사하며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축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0.3초의 기적, 감사의 힘(Thank You Power)이란 책을 인터넷에서 접했습니다. 저자 스스로 감사의 힘에 대해 매우 냉소적이고 회의적이었다고 하는데 일상 속에서 감사하는 습관을 갖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좋은 일이 계속 생겨났다고 합니다. 거짓말은 아닐 것이라 믿음이 갑니다. 우리 삶 속에 감사라는 개념은 깊이 뿌리박혀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간과하거나 잊고 지낸다는 것입니다. 하루를 살아가며 감사할 일이 최소 3개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이는 본인의 사고방식이 부정적인 패턴에 익숙해져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 책은 고마워요 당신에게/세상에게/나에게 등 3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감사의 힘은 본인 스스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쉽고 빠르게 전파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인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힘입니까? 그래서 성경에서도 누차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다음 주(10/9) 추수감사주일에는 목장별로 감사 찬양제로 드립니다. 한 해 함께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목장별로 감사 이벤트를 준비해 주셨으면 합니다. 꽁트나 감사글, 아니면 찬양과 함께 각 목원들 가정에 감사했던 일들을 소개해 주시면 되겠습니다.글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2011년 9월 27일 화요일

하나님에게 섭섭한 적이 있다(?) (9/25)

이번 주에는 휴스톤서울교회 최 영기 목사님 목회칼럼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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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는 어떤 분이 얼마 전 아래와 같은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과장된 표현이 있지만 일부를 그대로 옮깁니다.
“목사님 삶을 보면, 어려서 6.25를 겪으시고, 전쟁으로 부모님을 잃으시고, 고학으로 유학 와서 자리 잡을만할 때 목회자의 길을 걸으시어, 이곳까지 오셨는데... 사모님이 투병하시게 되니... 보통 사람으로 겪기 어려운 갖가지의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 싶습니다. 그런데도 꿋꿋하게 하나님의 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해 믿음으로 나가시는 모습에 격려를 보냅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하나님께 섭섭한 점이 정말 없으신지? 그렇지 않으시고 감사하시다면, 어떻게 그렇게 감사한 마음이 되는지.. 솔직히 궁금합니다.”정직하게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았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섭섭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는가?” 결론은 “없다!”였습니다. 이 분이 글에서 아내의 투병을 언급했는데, 세계에서 제일 좋은 암센터에서 치료받게 된 것이 감사하고, 지난 15년간 건강한 삶을 살게 해주신 것이 감사하고, 아내를 위하여 기도해 주는 수많은 분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왜 내게 불만이나 원망이 없을까? 복을 권리로 생각하지 않고 은혜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누리는 것을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진 것을 잃거나 더 갖지 못할 때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소유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이미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나 섭섭함이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내 환경이 좀 더 나았었으면...”, “내 성품이 좀 달랐었으면...”,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니 하나님께서는 불만스러웠던 요인들을 다 선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더 감격하게 해주었고, 썩 행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남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었습니다.
불만족스러웠던 성품도 선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즉시즉시 사태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단점 때문에 미리미리 계획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숫자에 약하다는 단점이 세부사항을 살피는 유능한 동역자들을 찾게 만들었고, 쌀쌀맞은 성격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리더라는 평을 듣게 만들었습니다. 예, 저는 하나님에게 대한 원망이나 섭섭함이 전연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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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대하면서 저 역시 하나님에게 대한 원망이나 섭섭함이 전연 없었다는 것에 동감합니다. 30세에 홀로 되신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그렇게 자란 환경을 탓해 본적이 없습니다. 캐나다 밴쿠버에 와서 이런 저런 환경과 여건을 겪어왔지만 하나님에게 불평해 본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잘못했다면 내 실수고 내 잘못이지 하나님을 탓해본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실수투성인 저를 은혜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에게 감사할뿐입니다.

2011년 9월 23일 금요일

“가정 교회는 대안 교회가 아니다”(9/18)

로이스 바렛이 지은 <가정 교회 세우기>에서 여성 리더인 저자는 가정 교회는 대안 교회가 아니라고 합니다. 성경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성도들이 만들어 가는 교회의 참된 모델이라고 말합니다. 이분의 말은 이와 같습니다:
 
가정 교회는 언약과 헌신과 소그룹 모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다. 가정 교회는 선구자들의 대안 교회가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교회다. 이들은 그저 성경공부 모임도, 대형 교회를 꿈꾸는 임시 정착역도, 선교단체도, 영성훈련 모임도 아니다. 가정 교회는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근본적인 교회다.
 
너무나도 명쾌하게 가정교회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 때문에 마치 가정교회가 휴스톤서울교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로이스 바렛에서 시작된 것처럼 착각을 일으킬 정도입니다. 계속해서 이분의 주장을 들어 봅시다:
 
이들은 얼굴을 마주 대하기에 적당할 만큼 소수가 모여 함께 예배하고 함께 사역하는 사역자들의 공동체다.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에서는 자신의 본질을 속일 수 없다. 누구 하나 공동체 가운데 자신이 맡은 책임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게을러질 수가 없는 관계다. 규모는 차이를 만들어낸다. 작은 공동체일수록 강한 책임감을 갖고 모임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사실 한자리라도 비면 그 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것이 가정 교회다. 가정 교회는 가정에서 모이기에 적당한 수, 7~12명가량의 소그룹을 말한다. 이 교회에서는 방관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가정 교회는 교회다. 가정 교회의 역사는 길다. 초대 교회는 가정 교회였다. 성도들은 가정 교회에 모여 식사하고 주의 만찬을 나누고 찬송하였다. 가정 교회는 그저 말뿐이 아니라 가족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이 공동체는 가정에서 모이는 가족 '같은' 모임이 아니라 진짜 가족 공동체이었다. 이들은 최소 2세기 동안 계속 모였고, 많은 가정집들이 모임장소로 개조되었다.
 
무엇보다 가정교회(목장모임)만큼은 한 영혼에 대한 비중을 크게 느껴지고 있다는 것이 소중한 가치라면 가치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장모임 안에서는 누구도 배제되거나 소외될 수 없는 작은 공동체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작은 공동체이기에 서로를 잊을 수 없고, 우리 각자의 섬김과 희생이 담겨있는 지체(목원)들이기 애뜻함이 더하는 것입니다. 평생 교회 안에서 살아왔지만 목장모임처럼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곳은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성경말씀 대로 지체의식을 강조하지만 자연스럽게 지체의식을 느낄 수 있는 곳도 교회 안에서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장모임에서 그 모든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가정교회가 대안교회가 아닌 주님이 원하셨던 바로 그 교회임을 말하는 로이스 바렛의 주장이 옳습니다.

가정교회는 16세기 개혁주의 신학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초대교회의 개척자들에게 부탁하신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영혼구원사역을 기반으로 하는 신약교회를 추구합니다. 이 사역이 옳다기보다 교회의 본질적인 존재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신약교회) 교회 개척자들은 이 사역에 순종했고, VIP를 중심해서 교회를 세워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가정교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 운동이 확산되고 있음을 감사합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교회 모습인데 이제라도 교회들이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갈급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1년 9월 12일 월요일

“삶공부 신청하세요!”(9/11)

내일이 한국에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추석 명절입니다. 명절이라고 부모님을 찾아뵐 만큼 여유가 있지 못하는 곳이 이민사회입니다. 명절에 귀성객들로 붐비는 소식을 접할때마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께 죄송하고,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불효 같은 마음이 나이가 들면서 더 해옵니다. 얼만 살날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들지만, 기껏해야 명절 때 전화 한번 드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렇다고 한국 간다고 뾰족하게 뭘 효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물론, 전화보다는 직접 얼굴을 뵐 수 있는 것이 더 낫기는 하겠지만 어디에 있든 자식들이 건강하게 살아가 주면 그것만큼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없다고 봅니다. 부모보다 앞서 세상을 떠나는자식만큼 부모에게 불효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위로삼아 이번에도 찾아뵙지 못하지만 안부삼아 전화 인사드렸습니다. 주바라기 식구들도 형편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전만해도 추석 명절이 되면 작게, 작게 모여서 추석 송편을 만들어 먹곤 했습니다. 아이들과 오순도순 모여서 색색별로 송편을 빚어 만들면서 추석 분위기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송편이라 모양과 크기도 다양했습니다. 이민 사회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색다른 경험입니다. 아이들에게도 추석명절을 경험케 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아이들이 부쩍 크면서 이런 모임이 없어졌습니다. 아이들도 관심이 없어졌고, 부모들도 바쁜 생활 속에서 잊혀져 가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은 있지만, 아이들도 공부하느라 바쁘고 우리의 분주한 삶의 현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송편은 빚지 못해도 추석 명절 때 한 곳에 모여서 음식을 나누며 친교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은 있습니다. 올 해 추석은 자연스럽게 전 아인 돌 모임으로 추석 겸해서 모일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특별히 진 미향목자님 가정에서 집을 오픈해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달 1일에는 김 우리 돌 모임으로 원 경연목자님 가정에서 집을 오픈해서 모임을 갖게 됩니다. 원 목자님의 집이 너무 멀어서 주일예배 후에 모임이 어려워 토요일에 모이게 되는데 이때는 연합목장모임 겸해서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예배 후에 삶공부 신청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가을이 시작되면서 삶공부 오픈을 합니다. 삶공부는 지정의(知情意) 중에 지()를 다루는 시간입니다. 인간은 세 가지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지정의(知情意)입니다. 알고, 느끼고, 원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속성이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도 세 가지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진정한 회심이나 영적 성장은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온전하게 이루어집니다. 가정교회는 지정의 이 세 가지를 골고루 만져줍니다. 목장 모임은 정적인 면을 만족시켜 줍니다. 감동을 주는 섬김에 의하여 교회에 대한 거부감과 예수 믿는 사람에 대한 반감이 사라지게 만들어 복음에 마음 문을 열게 만듭니다. 삶 공부는 지적인 면을 만족시켜 줍니다. 복음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어서 신앙의 근거를 마련해 줍니다. 주일 연합 예배는 의지적인 면을 만족시켜 줍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도록 하고 결단과 결심을 하게 만듭니다. 이런 면에서 이번에 오픈하게 되는 삶 공부가 여러분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원합니다. 특히, 생명의 삶공부는 주바라기 교회 한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기초 입문 과정입니다. 부담을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부담을 덜어 드리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주바라기 교회가 세워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중요한 시간입니다. 꼭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다(?)”(9/4)

최근에 잘 참여치 못했던 캐나다 시찰회 모임과 총신동문회 모임을 다녀왔습니다. 가정교회 목회자 모임은 우리가 목장모임 하듯 식사한 후에 찬양하고 각 목회자의 삶과 기도제목을 나누고 함께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시찰회나 동문회 모임 분위기는 조금 다릅니다. 시찰회는 대부분 각 지교회에서 불거진 이슈들을 다루거나 아니면 사무처리 일들을 다룹니다. 그리고 동문회는 전적으로 친교위주로 모임을 갖고 헤어집니다. 두 모임에서 얻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 동안 몰랐던 밴쿠버 주변 목회자들의 동향이나 교회 소식들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주변교회 상황에 조금 어두운 편입니다. 이런 모임에나 가야 한 가지씩 소식을 듣게 됩니다. 어느 교회 목회자가 교회를 사임하고 다른 교회로 사역지를 옮겼다느니.. 교회가 시끄러워져서 이런 저런 문제가 불거졌다느니.. 밴쿠버 교민 이만 오천명이(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빠져서 각 교회마다 교인들이 줄었다느니.. 여러 가지 다양한 밴쿠버 교회 소식들을 가만 앉아만 있어도 저절로 듣게 됩니다. 그 중에 가장 안타까운 소식은 목회자가 교회를 떠나간 소식들입니다.
 
어느 교회든 교인들이 이동하는 것처럼 목회자도 사역지를 옮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미국이나 한국 대형교회에서 청빙 받아 떠나가시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교인과 갈등으로 목회자가 목회지를 떠나는 경우입니다. 어느 경우든 목회자가 목회지를 떠나는 것은 성도나 목회자에게 큰 아픔이고, 상처일 수 있습니다. 늘 말씀 드리지만 가장 축복된 목회자는 교회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한 교회에서 평생 목회하고 은퇴하는 목회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목회자에게 뿐만이 아니라 한 교회 교인들에게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똑 같은 얼굴 평생 보며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한 목회자와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서로 영적인 교통을 나누며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닙니다. 목회자가 능력이 없다고 쫒아낸다면, 설사 능력 있는 목회자가 왔다 할지라도 그 능력(?)에 한 교회에 평생 머물러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교인들도 될 수 있는 한 목회자를 세워주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서 평생 맞춰가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듯이 교회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목회자와 교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모아주신 주님의 뜻을 따라 서로 섬겨갈 수 있다면 행복한 신앙생활을 살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안 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사업할 때 돈 벌 자신이 없었지만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본연의 일을 열심히 하면 선물로 주어지는 게 돈이라고 마음먹고 본질에 충실하려고 하다 보니 결국 돈을 벌게 됐다"는 말을 했는데 전적으로 동감하는 부분입니다. 이번 동문회 모임에서 몇 분에게 가정교회 사역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특별히 이민교회 목회를 경험하면서 힘들어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생각보다 교회 부흥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금방 될 것 같았는데 왔다가도 나가는 분들이 있어서 힘빠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안 철수씨가 우리에게 지혜를 줍니다. 목회는 교회 부흥이 목적이 아니라 본연의 일, 즉 목회 본질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회 본질적인 사역에 충실하기 보다는 교회 부흥이 안되서 힘들어 한다면, 그 힘듦이 목회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목회자의 욕심에서 오는 결과라고 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교회 부흥과 성장이 아닙니다. 교회 본질적인 사역을 붙드는 것입니다. 이 본질적인 사역이 영혼구원하는 사역임을 가정교회는 압니다.

2011년 8월 30일 화요일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신앙생활” (8/14)


평생을 교회 안에서 생활해 왔습니다. 나실인(?)도 아닌데 태어나 지금까지 교회를 벗어나 생활해 본적이 없습니다. 학생 때 줄곧 집과 학교, 그리고 교회가 저의 생활영역 전부였습니다. 3년의 군대생활도 군종병으로 사역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지냈습니다. 군입대하기 전에 신학대학을 다녔고, 제대하고 바로 신학대학원으로 진학했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교회사역에 전념해 왔고, 그것이 제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일반 사회문화보다 교회 문화에 익숙해 왔고, 그것도 평신도도 아니고 20대 초반부터 목회의 길을 걸어왔기에 교회생활에는 전문가(?)일지 모릅니다. 기존교회에서는 저와 같은 사역자를 필요로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와 소통하는데는 전혀 무내안입니다. 어떤 면에서 사회경험이 많은 목회자가 목회를 잘하는 것을 보면 뭔가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사회 경험이 전혀 없는 나 같은 목회자가 개척가정교회로 개척하고 비신자를 중심해서 교회를 세워 보겠다고 나섰던 자체가 지금 생각하면 엄한 짓(?)을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주바라기 교회가 세워져 왔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기적이고, 주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조금씩 가정교회 목장사역에 익숙해 갑니다. 사회 경험이 없어서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신자들이 반갑고 섬기는 것이 행복합니다. 어떠한 말과 행동에도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참아지고, 기도하며 기다려집니다. 무엇보다 목장사역이 좋은 이유 중에 하나가 서로를 위해 기도해 준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상관없이 목장안에 식구들은 우리의 섬김과 기도의 대상입니다. 평생을 교회에서 생활해 왔지만 목장과 같이 자연스럽게 삶을 나누면서 기도제목을 듣게 되고,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해 주는 사역은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새벽기도회 나와서 기도할 때 최소한 목장에서 함께 나눈 식구들만은 자연스럽게 기도제목이 떠올라 기도하기 너무 편합니다. 누구를 위해 막연히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좋습니다. 목장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장소”입니다. 기도제목을 나누고 중보기도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께서 기도제목 이상으로 역사해 주시는 것을 삶에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시면서 한 가지 기억해 두실 것이 있습니다. 중보기도는 주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소원을 이루는 기도가 아니라, 그분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기도입니다. 그분은 신실하십니다. 성실하시고,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시면서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 가시는 분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또한 나의 때가 아니라 그분의 때에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 가실 것이라 믿으셔야 합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중에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신 말씀처럼 그분의 뜻에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중보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바라기 교회 목회자로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으로 체험하는 교회가 되기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응답하시고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확신하기는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하며 그분의 뜻을 바라 볼 수만 있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간증이 될 것입니다.

“자녀없는 빈둥지를 무엇으로 채워갈 수 있겠는가?” (8/28)


부모라 어찌할 수 없는지 아들이 온다는 날짜를 기다리며 지냈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제 자기 자리를 찾아 떠나버렸습니다.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에 다시 오겠지만 아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손님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가정을 떠나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생활하고 있어서인지 생각하는 사고도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품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일단 부모 품을 떠난 자식은 호적상으로 자식일지 모르나 또 하나의 둥지를 틀기 위해 준비하는 독립적인 객체로 확연히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부모 곁을 아쉬워하지 않는 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자녀들이 성장해 부모의 곁을 떠난 시기에 중년 주부들이 느끼는 허전한 심리가 “빈둥지 중후군”(Empty Nest Syndrome)입니다. 나중이라도 이런 증상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자녀에 대한 거리감이 필요합니다. “아직은..”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리 먼 일이 아님을 잊지 마시기 마시기 바랍니다.

가족여행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부지런히 가족여행을 다녀놔야 한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리 크게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머리가 크면 언제 다녀왔냐는 식이고, 그 당시에 부모가 큰 마음(재정적으로) 먹고 다녀온 여행인데도 아이들은 크게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이 좀 커서 여행다니면 괜찮나 싶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큰 자녀들은 부모와 함께 여행가는 자체를 지루해 합니다. 여행기간 내내 차안에서 잠을 자던지 아니면 음악만 듣습니다. 경치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사진 찍자고 하면 귀찮게 생각해서 사정해야(?) 한 장 정도 간신히 찍습니다. 자기 친구들끼리는 방안에서 밤을 새면서 놀아도 재밌게 놀면서도 부모와 떠나는 여행은 왜 이리 흥미가 없는지 묻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알면서도 늘 아쉬워하는 쪽은 부모들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할 일도 아닙니다. 요즘 시대에 자라는 자녀들의 독특한 현상도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자라왔고, 지금은 부모 곁도 아닌 멀고 먼 이국땅에서 부모 없이도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소망적인 생각은 자녀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같은 시대 속에 살아가는 부모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없는 빈둥지를 무엇으로 채워갈 수 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가족여행의 즐거움은 이제 서서히 물 건너가는 느낌입니다. 이제 부모를 떠나가는 자녀들처럼, 자녀를 떠나 주바라기 형제자매님들과 더 끈끈한 여행의 스케줄이나 짜야할 것 같습니다. 물론, 금실이 너무 좋아서 본인들만 여행 다니는데 전혀 문제없는 부부들도 있겠지만, 때로는 부부들끼리 함께 어울려 여행을 떠나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언젠가 잭 아빠(신 정묵형제)가 RV 차를 구입해서 함께 여행 가자고 말씀하셨는데 요즘 아들을 보면서 유난히 그 말씀이 새록새록 기억이 납니다. 잊지 않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우리 인생길에 자녀들이 있기에 살아가는 모습도 있지만, 교회 공동체 안에 함께 인생길을 걷는 형제자매님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자녀들만 붙들고 살아가면 버틸 수 없는 인생 공간을 여러분들과 함께 채워갈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줄 모르겠습니다. 어느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자녀들을 다 떠나보낸 가정에 주바라기 형제자매님들이 목장으로 채워지는 간절한 기도가 벌써부터 소망함으로 닺아옵니다. 바랍니다.

2011년 8월 24일 수요일

“답답하십니까? 목장 나눔에서 기도제목으로 내놓으세요!” (8/21)


희망목장 한 은진 자매님이 목장모임 때마다 기도제목으로 내 놓았던 영주권 파일넘버와 신체검사 레터가 지난주에 동시에 나왔습니다. 이제 정상적인 절차로 진행된다면 4개월 정도 안에 영주권을 받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축하할 일이고 은진자매님 가정으로서는 캐나다 정착에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주바라기 교회 식구들 중에서 뿐만 아니라 밴쿠버 지역 안에서 영주권만 나오기를 기다리는 가정이 한두 가정이 아닐 것입니다. 이민 사회에서 사람의 애를 태우는 케이스 중에 하나가 비자문제로 고민하는 가정들입니다. 한국에서 영주권을 받아서 정착하신 가정은 잘 모르겠지만, 현지에서 영주권을 기다리는 가정으로서는 힘겨운 과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솔직히 영주권을 받았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심적으로 신분적인 안정이 필요한 것이고, 무엇을 하든 이민 정착에 가장 기본적인 틀이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워퍼밋이 나왔거나 영주권을 받았을 때 우리 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마음 아픈 것은 누구는 쉽게 받는 것 같기도 한데 어떤 가정은 그 과정이 너무 어렵게 진행되는 것을 볼 때입니다. 비자문제는 늘 불확실성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비자나 이민 절차를 다루는 전문업체들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이 비자문제입니다. 늘 확률적이고 경험적인 것을 기반으로 얘기 되어질뿐입니다. 캐나다 정부 관련된 장관 정도 위치에 있는 분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은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이민 절차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답답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민 영사들의 처분만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길 외에는 아무리 답답해도 방법이 없습니다. 이민생활 17년째 살아가면서 수많은 한인 분들이 비자문제로 힘겨운 과정을 밟아가는 것을 봐왔습니다. 남들은 영주권 얻어 보려고 그렇게 애써도 나오지 않는데, 어떤 분들은 영주권을 받고도 잠시 살아보고 이민 사회가 별로 돈벌이가 안 된다고 쉽게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애쓰는 분들은 안되고, 별로 관심 없는 분들에게는 영주권을 주는 이런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면서 제가 직접 이민성 장관이 되고 싶은 마음까지 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고, 우리는 캐나다 이민 사회 현실을 받아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목회자로서 저 나름대로 이런 현실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 어느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이민과정이지만 우리가 믿고 있고,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찌할 수 없다는 것에 매여서 마음만 애태우는 현실이 더욱 안타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 있기에 하나님에게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민 전문업체보다 더더욱 인생전문가이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이민과정을 다루는 영사들의 손과 생각을 다루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주님께 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부탁은 목장에서 여러 기도제목이 있겠지만 특별히 이민과 비자문제 만큼은 목원들이 함심해서 주님의 은혜의 손길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도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여러 가지 삶의 문제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님 앞에 부탁(기도)해 보시기를 진심으로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목장 나눔에서 기도제목으로 내놓을 수만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2011년 8월 12일 금요일

“신앙생활은 습관과의 싸움”-펌(최 영기목사)(8/7)


신약교회 회복이라고 불리는 가정교회 사역 중심에 휴스톤서울교회 최 영기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의 글을 대하다보면 가정교회 핵심과 본질을 잘 집어주시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물론, 가정교회사역의 원조(?)시지만 그만큼 깊은 묵상과 고민이 나름대로 있었지 않았겠는가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분의 새로운 글은 빠짐없이 읽어보는 편입니다. 이분의 글을 통해서 때로는 깊은 통찰력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에는 이분이 쓰신 목회칼럼 중에 가정교회 목장사역에 알곡과 같은 글이 있어서 주바라기 식구들과 나누기 원해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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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제자 훈련과 가정교회 제자훈련의 차이는 전자는 성경 공부를 통해서 가르쳐 제자를 만들려 하고, 후자는 삶을 나눔으로 제자를 만들려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전자에 의존합니다. 제자를 만들기 위하여 설교와 성경공부에 전폭적으로 의존합니다. 사람이 알면 변하고, 깨달으면 바뀐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은 17 세기에 서구에서 시작된 계몽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의 근본 문제를 무지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계몽과 교육을 통하여 무지가 사라질 때에 이상적인 사회가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허망한 꿈이라는 것이 2차 대전으로 인해 처절하게 입증되었습니다. 철학의 꽃을 피웠고 민도가 높다는 독일 사람들이 유태인 학살이라는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지식과 지성이 인간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목회자들이 성도의 삶을 바꾸는 도구로 성경 공부에만 의존합니다. 사실 성경 공부가 예수 믿은 후 2-3년 동안은 삶을 바꾸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이 후에는 소위 머리만 커지는 신앙인을 만들어냅니다. 오래 된 크리스천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몰라서라기보다 옛 습관과의 싸움에서 실패하고 있어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다 할지라도, 잘못된 사고를 하고, 잘못된 감정 반응을 보이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습관에서 즉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변하기 위하여서는 이러한 악습이 주님이 원하시는 삶에 합당한 습관으로 대치되어야합니다.
습관은 한 번의 결심과 헌신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한 깨달음이나 뜨거운 성령체험은 삶의 변화에 대한 동기부여는 해주지만 삶을 실제로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삶이 변하기 위해서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연습하되 반복적으로 해야 합니다. 순종을 연습하고, 용서를 연습하고, 경건을 연습해야합니다.
옛 습관이 새 습관으로 대치되도록 만들어주는 연습의 장이 목장입니다. 목장 식구들과 부대끼는 가운데 자신이 변하는 것밖에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갈등 가운데 자신이 깨어지면서 변화를 체험합니다. 목자 목녀가 되면 삶이 극적으로 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싫은 사람 안 만날 권리, 싫은 모임 참석 않을 권리, 이웃에게 섬김 받을 권리는 다 포기하고, 참고, 이해하고, 용납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스스로를 몰아넣었기 때문에 자신이 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11년 8월 2일 화요일

목자임명 및 목장분가 후기..(7/31)

목회자와 사모가 섬기는 원형목장..
한개의 원형목장이 세워지고 부단히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째든 목장에 목원들이 세워지기를 소원했던 그때가 유난히 생각나는 분가식이었습니다.
개척가정교회로 세워진 주바라기 교회에 8개의 목장이 세워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큰 기쁨과 감사, 그리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결코 쉬운 사역이 아님에도 목자로 헌신해 주신 목자분들이 존경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 유익되는 일이 없지만, 하늘나라의 유익을 위한 헌신에 주님께서 크게 도와주실 것을 새벽마다 기도을 올립니다.

처음 한개의 목장이 두개의 목장이 되고, 세개의 목장이 되는 과정에서 또 다시 두개가 되고 네개가 되었다가 세개가 되고 하면서..
이러다가 목장이 영영 세워지지 않겠네.. 하며 힘을 잃었을 때가 있었는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걸어온 기특함, 보람, 그리고 감사가 넘치는 하루였습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포기하지 않도록 연약하지만 함께 힘이 되어준 주바라기 식구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김경미목자님과 김진규목부님이 떠났지만..
주님은 떠나지 않으시고 주바라기 사역에 함께 하심을 지난주 목자임명 및 목장분가식를 보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8개의 목장으로 늘었다는 수적인 기쁨이 아닌 8개의 목장이 섬길 VIP영혼들을 기대하는 기쁨이 더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숫자는 많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하는 것을 목회하면서 수없이 체험해 왔습니다.
특히, 유동인구가 많은 이민사회에서 수적인 계산은 이미 잊은 지 오랩니다.
가정교회 목장사역에서는 하나님 나라라는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영혼구원을 위한 섬김은 바로 이런 그림 위에서 그려질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8개의 목장을 통해 잃어버린 영혼들이 찾아지는 열매들을 기대해 봅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못해도 영혼구원 사역만큼은 “전문가”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영혼구원사역은 오로지 섬기며 기다리는 사역입니다. 왕도는 없습니다.
끊임없는 기다림과 섬김, 그리고 주님께 기도하며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재주가 통하지 않는 사역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더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피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목장사역하면 할수록 기도외에는 길이 없음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