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6일 일요일

목사의 심정, 목자의 마음(12/6)

   가정교회 사역하면서 목사의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진정한 목사라면 최소한 영혼에 대한 간절한 소원함이 있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목양일심”이란 말을 귀로 듣고, 머리로만 이해했었는데 가슴으로 느껴짐을 체험해가고 있습니다. 서흔 하나에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마흔이 넘어서야 참된 목회자의 길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한없이 부족한 목사인데도 사랑해 주고 섬겨주는 주바라기 식구들이 더더욱 존경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더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을 “주님의 은혜”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딱히 잘한 것도 없는데 인정받고, 사랑받는다면 그것이 바로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있기에 저 같은 목회자도 목회를 감당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적인 잣대로 목회 등급이 평가되어진다면 이미 수준미달로 목회선상에서 물러났어야 했을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목회적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닙니다. 괜한 겸손을 떠는 것도 아닙니다. 특별한 심적 변화가 있어서도 아닙니다. 목회해 오면서 늘 느끼고, 깨닫고, 발견해 가는 실상입니다.

   많이 부족한 목사지만 한 가지 위로가 있기는 합니다. 최소한 목회자 마음 가운데 교우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기도제목이나 가정의 기도제목보다 주바라기 식구들의 기도제목이 늘 앞서 있는 것을 봅니다. 개인의 건강에 대한 염려보다 교우들의 건강이 염려되고, 늘 상 기도 가운데 있습니다. 주바라기 가정들의 어려움이 저의 어려움처럼 느껴지고 속상하기까지 합니다. 연락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교우들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시간이든, 어떤 때이든 달려가고 싶고, 도와 드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왜그런지는 모릅니다. 단지, 그렇게 하고 싶은 목회자의 마음이 있습니다. 교우들의 일이 잘될 때는 주님의 은혜가 크다고 감사해 합니다. 그러나 일이 잘 안 되는 소식을 듣게 되면 목회자의 기도가 부족했다는 생각에 몸둘바를 모릅니다. 하나를 주고, 두 개를 주고, 또 주고 해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주고 또 주어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돈 좀 벌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보면 많이 피곤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주바라기 식구들을 위한 일은 매일을 거듭해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섬김이 좋아서가 아니라 섬김을 넘어서는 사랑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목사의 심정입니다.

   요즘 주바라기 목자들의 말을 듣다보면 목원들에 대한 목사의 마음이 있습니다. 양을 돌보듯 세심함이 있고, 간절함이 있음을 봅니다. 늘 염려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유가 뭐냐고 하면 본인도 잘 모르지만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이 주시는 목사의 마음입니다. 구역장도 아니고, 속장도 아니고, 그러기에 목자라 칭하는 것입니다. 목자에게는 목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양들에 대한 돌봄이 있는 것입니다. 목장에 식구들이 많아지면 음식 챙기는 것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명이라도 더 오면 한없는 기쁨이 있지만, 어느 주간에 적게 오면 오히려 좋을 것 같은데 마음이 상합니다. 목원들이 속상해하고 걱정이 많아지면 목자는 간절히 소원하는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안타깝고, 속상해하고, 어쩔 줄을 모를만큼 낙심하기도 합니다. 목자의 부족함을 느낍니다. 섬김이 부족했나 싶습니다. 그래서 목자의 자격이 없다 싶을만큼 자신감을 상실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목자가 진정한 목자요, 신실한 목자입니다.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이 주바라기 목장의 소망이고 기쁨입니다. 목사의 심정을 품고 가는 사역이 목자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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