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 사역하면서 목사의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진정한 목사라면 최소한 영혼에 대한 간절한 소원함이 있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목양일심”이란 말을 귀로 듣고, 머리로만 이해했었는데 가슴으로 느껴짐을 체험해가고 있습니다. 서흔 하나에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마흔이 넘어서야 참된 목회자의 길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한없이 부족한 목사인데도 사랑해 주고 섬겨주는 주바라기 식구들이 더더욱 존경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더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을 “주님의 은혜”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딱히 잘한 것도 없는데 인정받고, 사랑받는다면 그것이 바로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있기에 저 같은 목회자도 목회를 감당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적인 잣대로 목회 등급이 평가되어진다면 이미 수준미달로 목회선상에서 물러났어야 했을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목회적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닙니다. 괜한 겸손을 떠는 것도 아닙니다. 특별한 심적 변화가 있어서도 아닙니다. 목회해 오면서 늘 느끼고, 깨닫고, 발견해 가는 실상입니다.
많이 부족한 목사지만 한 가지 위로가 있기는 합니다. 최소한 목회자 마음 가운데 교우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기도제목이나 가정의 기도제목보다 주바라기 식구들의 기도제목이 늘 앞서 있는 것을 봅니다. 개인의 건강에 대한 염려보다 교우들의 건강이 염려되고, 늘 상 기도 가운데 있습니다. 주바라기 가정들의 어려움이 저의 어려움처럼 느껴지고 속상하기까지 합니다. 연락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교우들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시간이든, 어떤 때이든 달려가고 싶고, 도와 드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왜그런지는 모릅니다. 단지, 그렇게 하고 싶은 목회자의 마음이 있습니다. 교우들의 일이 잘될 때는 주님의 은혜가 크다고 감사해 합니다. 그러나 일이 잘 안 되는 소식을 듣게 되면 목회자의 기도가 부족했다는 생각에 몸둘바를 모릅니다. 하나를 주고, 두 개를 주고, 또 주고 해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주고 또 주어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돈 좀 벌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보면 많이 피곤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주바라기 식구들을 위한 일은 매일을 거듭해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섬김이 좋아서가 아니라 섬김을 넘어서는 사랑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목사의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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