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5일 토요일

아름다운 찬양의 대물림(5/4, 2008)


   과거 중,고등부 시절에 교회에 모이면 늘 상 찬양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바이올린, 신디, 플롯, 일렉트릭 기타나 베이스 기타, 드럼.. 이런 악기들은 구경도 못했고 그나마 볼 수 있었던 악기라면 피아노와 통 기타가 고작이었던 시대였습니다. 찬양연습은 주로 중창, 뚜엣, 혼성4중창 등 목소리로 화음을 만들어 연습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가정을 막론하고 재정적으로 넉넉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관악기든 타악기든 악기를 다룬다는 자체가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자녀들이 하고자만 한다면 얼마든지 부모님들이 밀어줄 태세(?)인데 자녀들이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듯합니다. 요즘 찬양은 과저처럼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를 나누어 파트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악기연주 연습과 보컬 팀의 화음연습이 새로운 찬양 스타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찬양의 스타일은 시대가 다르게 변해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듯이 찬양도 스타일은 다르지만 찬양의 본질적인 사역은 동일한 것입니다.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가 동일한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듯이 오늘날 21세기 찬양의 본질적인 사역의 방향을 잃지 않으면 됩니다. 과거 찬양의 습관에 젖어 곡조와 템포에 대한 어색함이 없지는 않지만 찬양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주바라기 학생들이 찬양연습에 열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목회자로서 기쁨이 있습니다. 부모들의 신앙적인 모습이 서서히 자녀들에게 전해지고 있다고 봅니다. 신앙생활은 보고 배우는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문제는 보고 배우는 것이 부족합니다. 단순히 듣고 배우는 제자의 삶에 치우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론과 실제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교수들은 바른 목회를 해야 한다고 부르짖지만 바른 목회가 어떤 것인지 신학생들이 보지를 못했습니다. 목회자들은 바르게 살아야한다고 부르짖지만 바르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교인들이 볼 수 있는 틀이 없습니다. 교회 정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교회가 타락했다고 부르짖지만 거룩한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 결과가 너나 할 것 없이 이중적인 삶에 빠져 있고 죄책감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보고 배우는데서 참된 제자의 삶이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이것이 가정교회가 지향하는 목회 방향이고, 비전인 것입니다. 주바라기 교회가 자녀들과 함께 예배를 시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보고 배우는 시스템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목장사역이 보고 배우는 시스템입니다. 하나님에게 예배하는 모습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사사기 2장 10절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이 죽은 뒤에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는데, 그들은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 이 말씀에 따르면 구약 사사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보고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1세의 신앙인들의 신앙의 모습을 2세들에게 끊임없이 보여 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대형교회가 되면서 2세들이 부모인 1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겨가는 지 전혀 알 수 없는 시스템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바라기는 주바라기 교회가 1세와 2세간 하나님을 섬기는 보고 배우는 시스템을 잃지 않고 더불어 믿음의 대를 이러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중고등부 학생들이 앞에 나와 찬양 인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당장 인도하기에는 준비가 미비 하겠지만 꾸준히 연습하고 있기 때문에 잘 감당하리라 믿습니다. 찬양의 질보다 찬양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부모님들이 많이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찬양의 대물림이 있는 주바라기 교회이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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